벼 익어가는 냄새

한자 ‘향(香)’은 벼 화(禾)자에 날 일(日)자를 하고 있다. 뜻풀이를 하면 ‘벼가 익어가는 냄새’다. 고문(古文)에는 기장(수수와 비슷한 곡류) 서(黍)자 아래 달 감(甘)자를 하고 있다. 기장에 단맛이 나게 하려면 발효를 시킬 때 가능한 일이다. 이 기장으로 빚은 술을 울창주(鬱?酒)라고 한다. 울창주는 신을 내리게 하는 강신주(降神酒)로서 오늘날에도 천제(天祭)나 종묘제례(宗廟祭禮)와 같이 나라 규모의 큰 행사에서 쓰인다. 이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하나가 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향’은 술과 함께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어울림을 이루는 매개체다.

선비들은 차를 마실 때 선향(線香)을 피웠다. 선향은 예로부터 문인들이 즐겨 찾던 향이다. ‘한 줄기의 향’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정신적인 부분이 강조되어 선비들이나 의식을 치르는 곳에서 사용됐다. 집중이 필요한 경우엔 향을 곧바로 피우고, 마음의 여유를 찾고자 할 때는 비스듬히 피우기도 했다. 사대부들은 선비가 사는 집을 난형지실(蘭馨之室)이라 불렀다. 또 선비들의 운치 있는 네 가지 일, 즉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고 그림을 걸고 꽃을 찾는 4예(四藝)에 향을 즐기는 행위를 맨 앞에 포함시켰다. 연인들은 사랑을 위해 향을 바르거나 먹기도 했다.

향의 은은함과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중요시 여겼던 이들은 향을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남달랐다. 향을 피우면 눈을 감고 좀 더 섬세한 향의 의미, 향의 흥취에 빠져 들었다. 이런 행위를 일컬어 ‘문향(聞香), 즉 ‘향을 듣는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향을 만드는 재료와 효능도 다양하다. 감송향(甘松香)·단향(檀香)·목향(木香)·안식향(安息香)·용뇌(龍惱)·울향(鬱香)·유향(油香)·육계(肉桂)·침향(沈香)·회향(回香)이 있는데 우리 향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가치 외에도 향기 요법과 같은 실용적인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이틀이 멀게 비가 오고, 태풍 ‘매미’가 참으로 혹독한 시련을 주었어도 바야흐로 논에서 벼 익어가는 냄새가 그윽하다. 올 쌀 생산량이 23년만의 최대 흉작이어서 가슴은 아프지만 그래도 가을은 향기로운 계절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