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흉작인데 농림예산 동결이라니

올해 쌀 생산량이 잦은 비와 재배면적 감소 등으로 1980년 이후 23년만에 최저인 3천121만섬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농림부의 대책이 너무 태평스러워 황당하기 짝이 없다. 흉작에도 불구하고 올해 재고쌀 842만섬에다 외국쌀의 최소수입물량(MMA) 143만섬을 올 쌀 생산량에 더할 경우 내년 예상소비량(3천374만섬)보다 730만섬의 여유분이 있어 수급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국내 농사가 흉작이어도 수입할 쌀이 있으니까 걱정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쌀 생산량 감소는 농민과 국민 모두에게 물심양면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상대로라면 올해 쌀 생산량은 지난 해에 비해 300만섬이 줄어 든다. 쌀 300만섬이 줄어들 경우 농민들의 수입은 무려 8천700억원이 감소되는 막심한 타격을 입는다.

일반 소비자들 역시 쌀 생산량이 줄어듦으로써 햅쌀 가격이 올라 장바구니 물가를 걱정해야 한다. 여기에 각종 재해 등으로 올해 생산된 쌀의 품질이 떨어져 소비자 만족도도 낮아질 게 분명하다.

쌀 재고 처리로 골머리를 앓았던 정부가 1년만에 쌀 수급대책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무시한 농정 탓이다.

앞으로 올해와 같은 대규모(278만섬) 대북지원은 고사하고 농림부가 올초 세웠던 300만섬 특별재고 처리 방향도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더구나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국내비상상황을 대비해 비축하도록 요구한 적정재고량(600만섬)을 제외할 경우 가용 쌀은 130만섬에 불과한 실정이다. 태풍이 또 다시 불어 닥치거나 내년에 자연재해가 있을 경우 적정재고쌀마저 풀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사정이 이렇게 급박한데도 정부가 최근 확정한 내년도 농림예산을 올해 예산수준인 8조8천여억원으로 동결하다시피 하고 사업성 예산마저 줄인 것은 벼랑 끝에 몰린 농업·농촌의 위기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행정이다.

지금 농촌은 과다한 부채와 흉작, 태풍피해, 농업협상의 불안감 등으로 삶의 의욕조차 상실하고 있는 중이다. 농민과 농업단체가 요구하는 올해 수매가격의 10여 % 인상과 농림예산 증액은 당연히 관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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