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의 가뭄과 여름의 수해를 이겨낸 농부들의 노고는 요즘 결실과 보람으로 들녘을 황금물결과 풍요로운 과실로 넘실거린다. 서울시민과 수도권 시민들은 주말과 휴일이면 자동차를 이용해 가족과 함께 근교의 높고 푸른 하늘과 산야 속에서 충만한 가을 정취를 한껏 만끽한다.
그런데 종종 온전히 마무리 돼야 할 가을날의 외출이 간혹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얼룩지는 경우를 많이 접하는데 교외를 찾는 도시사람들에게 당부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다. 농촌을 찾은 이들은 안 그래도 시름에 빠져 의욕을 잃은 농촌주민들에게 오해를 받는 행동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녀를 동반하고 자연을 가르치며 들녘의 메뚜기를 잡고 떨어진 밤을 줍는 것까지는 환영할 일이나 도가 지나쳐 다 익은 벼를 뽑는다거나 엄연히 주인이 있는 밤나무와 사과, 배, 포도나무에서 다 익지도 않은 과실을 따는 행위는 자녀 교육을 넘어서 남에게 폐를 끼침은 물론 형법상 엄연히 손괴죄요, 절도죄인 것이다.
매년 가을마다 배를 절도 당한 농부가 일요일날 아침부터 오후까지 과수원을 지키다 과수원 옆에 성묘 온 서울사람들이 땅에 떨어진 배 대 여섯개를 줍는 것을 보고 절도죄 신고를 한 일도 있다. 순박한 농민인심이 사라졌다느니 우리 어렸을 때는 서리도 했다는 말은 이제 농민들에게 설득력이 없으며 농민들에게 한해 생사를 건 자식과도 같은 수확물인 것이다. 놀러온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이요 한 두개 기념으로 가져가는 과실이요, 꽃이지만 그나마 아직도 농촌을 지키고 있는 농민들에게는 제 몸처럼 아끼고 지키는 재산인 것이다.
삭막한 농촌 인심을 탓하기 전에 삭막한 농촌을 위해 내가 도울 일이 무엇인가를 다같이 고민하는 일이 우선 절실하며 이 가을철만이라도 함부로 농작물을 건드려서 절도의 오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행동에 각별히 조심하길 바란다./박경호·가평군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