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 정국’ 청와대와 정치권의 자세

재신임 문제의 국민투표에 조건이 붙어서는 안된다. 가령 지역구도 타파 등 정치개혁과 연계해 재신임을 묻는다는 것은 당치않다. 지역구도 타파 등 정치개혁을 바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이를 새삼 대통령의 정책으로 내걸어 재신임 안건으로 삼는다면 유권자는 모순된 갈등을 빚고 결과는 빗나간다. 불신임 표를 찍으면 본의 아니게 정치개혁을 반대하는 것이 되고, 정치개혁을 지지하자니 역시 본의 아닌 재신임 표를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개혁과 재신임을 동시에 지지하는 유권자도 있겠지만 혼돈의 갈등을 겪는 유권자도 있을 것이므로 이는 정확한 재신임·불신임의 의사 표출을 가려내기가 어렵다.

이상의 정치개혁과 재신임 여부가 완전히 별개인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어떤 조건도 연계시켜서는 안된다. 청와대에서 검토되던 재신임 문제의 지역구도 타파 등 정치개혁 연계설을 노무현 대통령이 일축,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고 재신임 여부만 묻겠다고 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민투표 시기를 오는 12월15일 전후로 제시한 것은 너무 늦다. 국가운영의 이완이나 누수를 막기 위해서는 되도록 더 앞당겨 조속히 확정지어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여부는 앞으로의 안정된 국정운영을 지금까지의 정황과 결과로 보아 과연 더 믿고 맡길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 주된 판단이 지, 앞으로 무엇을 또 어떻게 하겠다는 참고 자료가 주된 판단의 대상인 것은 아니다. 이러므로 국민투표의 시기를 하루라도 더 빨리 잡는 것이 보다 정확하게 국민 의사를 묻는 것이 된다.

청와대나 정치권은 재신임 정국을 꼼수로 대해서는 안된다. 청와대가 설사 재신임 여부를 정책과 연계하지 않고 별개로 묻는다 하더라도 동시에 실시하는 것은 역시 받아들일 수 없는 술수다. 또 통합신당은 처음에 반대하던 국민투표를 적극 지지하고, 국민투표를 환영하던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모두 감각적 대응으로 국민이 보기에 좋지않다. 정견이 바로 서지 못한 감각적 대응의 일희일비로 당이 좌고우면하는 것은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정치권 역시 노 대통령의 재신임 문제 제기에 시급히 정확한 입장을 정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지금 같아서는 정치권이 대통령의 잇단 강력한 역공 드라이브에 휘말려 휘청거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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