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군자에게 잘못을 저지를 지언정 소인에게 실수하지 말라” 제(齊)나라 관중(管仲)이 인사 관리에 대해서 한 말이다. 상대가 군자라면 처우를 잘못하더라도 깊이 원한을 사지 않지만, 소인을 후대한 경우 그 손해는 헤아릴 수 없다. 오늘날 한국 정치판에도 나타나는 극명한 사실이다.
인간이 인간을 평가하는 데는 잘못된 경우가 없지 않다. 그래서 관중은 사람을 등용할 때 “첫째, 지위에 어울리는 덕을 지니고 있는가 둘째, 봉록에 어울리는 공적을 세우고 있는가 셋째, 관직에 어울리는 재능을 지니고 있는가를 평가하라”고 했다.
무릇 통치자는 자기를 위해 진력해 줄 그 나름의 충신, 현자(賢者)를 등용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좀처럼 이상적인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충신이라고 여긴 사람이 실은 충신이 아니고, 현자라고 여긴 사람이 실은 현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기(史記)’의 ‘굴원열전(屈原列傳)’에 “이른바 충신은 불충이고, 이른바 현자는 현자가 아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전국시대 초(楚)나라 회왕(懷王)은 굴원을 중용했다. 당대 최대의 시인인 굴원은 학식과 정치적 식견이 풍부하고, 예절과 응대하는 태도 등 정치가로서의 소양을 갖춘 인물이었다. 회왕이 굴원을 중용하자 시기하는 무리가 생겨났다.
하루는 회왕이 굴원에게 법령의 초안 작성을 명했다. 굴원이 초안작성을 완성했을 때 중신 하나가 그 것을 가로채려 하였다. 굴원이 거부하자 그 중신이 회왕 앞에서 모함했다.
“법령을 작성할 때마다 왕께서는 언제나 굴원에게 명하십니다. 그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하지만 굴원은 법령이 공포될 때마다, 이것은 자기가 만들었으며, 자기가 없으면 왕은 아무 것도 만족하지 못한다고 떠벌리고 있습니다.”
회왕은 금세 안색이 변했다. 그 뒤 굴원을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다. 전국칠웅(戰國七雄)에 의한 패권쟁탈전이 한창인 때여서 국가의 앞날을 위해 간언(諫言)하는 굴원을 끝내는 조정에서 추방해 버렸다. 그러나 굴원은 추방된 뒤에도 나라와 회왕을 생각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었다.
굴원은 자신의 詩 ‘이소(離騷)’에 군주의 지위를 튼튼히 하고 나라를 바로 잡아 조국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이키고 싶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그러나 회왕은 최후까지 잘못을 깨우치지 못했다. 초나라는 하루가 멀게 영토를 뺏기고 결국 진(秦)나라에 멸망당했다. 굴원은 원통한 마음을 지닌 채 멱라의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통치자는 누구나 자기를 위해 충성을 다해 줄 사람을 구하고, 우수한 사람을 등용하고 싶어한다. 충성한 자, 우수한 자를 등용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반대인 경우가 왕왕 있었다. 충성한 체 하는 자, 현인인 체 하는 자를 표면으로만, 인지상정으로만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회왕도 마찬가지였다. 충과 불충을 분간하지 못한 실정(失政)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진나라에서 객사하는 비운을 당했다.
작금 한나라당, 민주당, 통합신당, 자민련 등 각 정파가 오직 당리당략만을 위해 이전투구하는 판국에 소위 ‘정신적인 여당’인 통합신당 김근태 원내대표가 지난 16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진은 책임을 깊이 느껴야 하고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했다고 해서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 며 “국무총리 이하 내각도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경험미숙과 개혁 일변도로 국정 난맥상을 일으킨 청와대 비서진을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잘라야 한다는 뼈 아픈 말이다.
“차라리 군자에게 잘못을 저지를 지언정 소인에게 실수하지 말라”
굴원의 충정을 오판한 회왕 같은 어리석음도 없어야겠지만, 관중의 이 말을 오늘날 역(逆)으로 생각하면 청와대 비서진, 모든 각료들이 자신의 德과 공적, 재능을 스스로 판단하고 처신할 것을 암시하는 뜻이다. 그러나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말고는 불행하게도 대통령의 눈치만 보고 있다. 우이독경이다. 여전히 마이동풍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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