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고시인 대학 수학능력시험의 공정성과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됐다. 소위 ‘스타급’학원 강사가 수능 출제위원이었다니 이는 출제위원 선정과정에서 최소한의 검증작업조차 거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더구나 이 강사의 석사논문 중 일부가 이번 수능 언어영역에서 가장 까다로운 문제로 알려진 철학지문(4개 문항·9점) 내용과 거의 흡사한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
의혹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 강사가 강의하고 있는 모 입시사이트 인터넷 게시판에 수능 1주일 전부터 ‘언어영역 출제교수 1명이 철학 전공’이라는 글이 올라 왔다는 것은 사실상 명단이 사전 유출된 셈이다. 이 사이트는 47만6천여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국내 최대의 온라인 입시사이트다.
수능시험 주관기관인 교육평가원이 “학원강사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해명과 “지문은 중복될 수 있다”는 해명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수능 전 인터넷 언어영역 강좌에서 ‘칸트 관련 내용은 꼭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됐기 때문이다. 특히 학원 강사가 이 문제를 출제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그가 칸트 논문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석사학위 논문과 수능 지문 내용이 흡사한 점이다.
이번 일로 수능 출제위원 선정 및 운영의 문제점도 동시에 드러났다. 출제위원(교수 86명, 고교 교사 33명)들은 지난달 9일부터 강원도 모처에서 합숙에 들어가 수능당일 제5교시 시험이 시작된 지 10분 뒤인 오후 5시40분 감금(?)에서 해방됐다고 한다. 출제기간 중 이들은 휴대전화도 소지하지 못하고 전화통화 내용도 녹음됐다.
그러나 1개월간 감금생활을 해야 하고 보수도 하루 15만원에 불과한 데다 출제기간인 10∼11월은 대학교수들이 가장 바쁜 프로젝트 결과 제출시기와 겹쳐 있어 출제상 무리가 우려된다. 더구나 원칙적으로 대학 전임교원이 아니면 출제위원이 될 수 없는 데도 서울 모 대학 초빙교수인 학원 강사를 출제위원으로 선정한 것은 책임을 면키 어렵다.
수능 재시험 요구까지 제기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학원강사 출제위원 선정은 엄청난 파문이 예상된다. 교육평가원은 사실을 해명하고 후속 조치를 빨리 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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