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두 종류

“내가 드릴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밖에 없습니다.”

1940년 영국 총리가 된 직후의 의회 연설에서처럼 윈스턴 처칠(1871~1947)은 청중의 머리보다 가슴을 향해 직설적으로 호소했다. 처칠은 손수 연설문을 작성했는데 대면 접촉이 아닌 라디오 방송·의회 등을 통해 설득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전란의 폐허가 된 거리에서 눈물을 떨구거나 다우닝가(街) 10번지부터 의회까지 대중 앞을 자연스럽게 활보하는 친밀감이 밴 그의 행동은 대중과 소통했다.

“히틀러가 지옥을 범한다면 악마한테라도 아양을 떨겠다”는,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낸 동맹전략과 승부욕도 제2차대전의 승인(勝因)이 됐다. 처칠은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기도 전에 이를 확정된 사실인 양 ‘선의의 거짓말’을 남발해 국민들을 다독였다.

처칠의 위대함은 자신에게 거역할 줄 아는 부하를 기용해 그들의 조언을 따른 점이다. 그는 신중하고 열정적인 앨런브룩 참모총장을 중용, 생산적 긴장관계를 통해 자신의 단점을 메웠다.

처칠은 숙적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1889~1945)를 ‘피와 약탈에 굶주린 탐욕스런 괴수’로, 히틀러는 처칠을 ‘유대인 꼭두각시’로 방송과 공석에서 맹비난했다.

히틀러는 알콜중독자이자 만취 상태에서 총기 오발 사건을 일으켰던 측근을 경호대장으로 기용할 만큼 처신에 문제가 있더라도 자신의 충복에겐 관대했다. 그는 선전장관 괴벨스, 외무장관 리벤트로프, 친위대장 히믈러 등으로부터 개별 보고를 받는 일을 즐겼고 적대적 파벌을 이룬 부하들 간의 경쟁·적개심을 부추긴 뒤 중재자 역할을 함으로써 권위를 다졌다.

히틀러는 장악하려 들었고 처칠은 배분하려 했다. 히틀러는 권력욕에서 비롯된 ‘권위주의적 리더십’이었고 처칠은 성취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영감을 주는 리더십’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해군 작전 실패의 책임자이자 1930년대 대부분을 야인으로 지낸 처칠과 1923년 뮌헨 ‘맥주집 반란사건’ 주모자로 1년여간 독방에 수감됐던 히틀러가 보여준 두 종류의 리더십은 지금도 지도자와 대중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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