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장외투쟁, 자승자박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조건부’란 것을 단 것은 궁색하다. 거부면 거부 지, 조건부 거부란 헌법에도 없는 소리다.

이는 자신의 측근비리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보이나, 어떻든 자신의 측근비리 특검법안을 자신이 거부한 것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보기좋은 건 아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강경 일변도 대응 역시 보기가 좋지 않다. 2004년도 정부 예산안을 비롯, 정치개혁 입법안 등 갖가지 의안이 산적해 있다. 이런 마당에 국회 의사일정의 불참 선언은 무책임한 처사다. 의원직 일괄 사퇴라는 것도 책임있는 자세라 할 수 없다.

장외투쟁도 그렇다. 노동자들이 길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농민들이 길 거리에 쏟아져 나온다. 여기에 국회의원들까지 길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것은 민생을 더 더욱 불안케 한다. 대통령 탄핵도 아직은 말할 일이 못된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뇌물설은 심증일 뿐 확증이 없다. 설사 증거가 드러난다 해도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 면책권을 갖는다. 직무상 불법행위와 관련된 탄핵사유가 충족된다고 보기엔 아직 미흡하다.

한나라당의 강경 투쟁은 오히려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결과가 되기 쉽다. 국회를 뛰쳐나온 국회의원들에게 박수를 칠 국민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장외투쟁이 장기화되면 대통령을 탓하든 국민들도 종국엔 한나라당을 더 원망하게 된다. 청와대는 이를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특검법안 거부정국이 처음엔 대통령에게 불리했던 게 역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헌법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했으면 한나라당 역시 국회에서 헌법대로 재의에 붙이면 된다. 재의 통과의 전망이 투명하든 불투명하든 그런 것을 먼저 계산하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설령 재의가 의결되지 않는다 해도, 재의에 부치지도 않고 장외로 가는 좌절보다는 정치적 의미가 더 강하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특검법안의 폐기는 그래도 역시 청와대 부담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전근대적 방식의 강경투쟁만이 능사가 아니다. 한나라당은 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이유로든 정기국회에 우선할 수 있는 명분은 없다. 자승자박의 어리석음은 뭐고, 난국타개의 현명함은 뭣인가를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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