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문제아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가출에서 느닷없이 다가온 한 아저씨. 숙식제공에 용돈까지 이유없는 친절에 의심은 했지만 그땐 흑심의 대가여도 좋았다. 하지만 결국 다방에 팔아 넘겨져 낯선 아저씨들과 성관계를 갖다가 어린 나이에 심한 병에 걸려 임신한 아이까지 사산하고 말았다.”
“교복 대신 짙은 화장과 굽 높은 신발, 아찔한 옷들. 그곳에서는 잘못을 할때마다 가게 삼촌들이 날 가둬 놓고 옷을 벗기고 야구방망이로 때렸다. 저수지로 끌려가 포클레인에 거꾸로 매달려 물속에 잠길 땐 숨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한달만 (업소일을)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유흥업소 마담과 200만원에 ‘악마와의 계약’을 맺고 말았다. 하지만 큰 돈을 벌 것이라는 말과 달리 남성들과 성관계의 대가로 받은 돈들은 하나같이 업주들이 영업비, 지각비, 세금, 결근비, 마담앰티비란 명목으로 가져가는 등 암묵적인 화류계의 법칙에 엄청난 빚만 남게 됐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으로 성매매의 유혹에 빠져 들었지만 한 달도 안돼 수렁에 빠져 헤어져 나올 수 없음을 깨달았다. 손님의 커피 취향을 외우는 것 대신 나도 국·영·수를 공부하며 열심히 공부하던 때가 있었고 술과 담배 대신 친구들과 떡볶이 사먹던 때가, 화려한 화장 대신 로션과 비누냄새가 나던 적이 있었다.”
국무총리실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최근 성매매를 경험한 여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체험수기 내용 중 일부분들이다. 성매매 피해 청소년들이 가출한 뒤 겪는 성매매, 유흥업소에서의 탈출과 극복 과정이 적나라하게 담겨져 있다. “다시 쓰고 고쳐 쓰기를 반복하면서 내 또래들의 다른 친구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서 수백번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 수기에 공모하게 됐다”는 이들 10대들의 고발장은 “희망까지 잃을 순 없어요”라는 수기집으로 발간됐는데 지금 이 시각에도 수기의 주인공 같은 많은 여성 청소년들이 어둠 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것이다. 형편없이 타락한 이 사회의 무서움을 모르는 미성년자들이 새삼 걱정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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