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불법자금 인식이 잘못됐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이회창 대통령 후보보다 돈을 덜 썼을 것이라는 말은 일전에 여기서 했다. 그러고도 이 후보는 지고 노 후보는 이겨 대통령 자리에 올라있다.

연이나 대선자금의 검찰수사가 진전되면서 이회창씨는 감옥에 갈지도 모를 처지에 처했고, 노무현씨는 형사특권을 지닌 대통령의 지위에 있다. 측근들의 잇따른 불법자금 동원이 드러나고는 있어도 노 후보와의 자금관계는 여전히 장막에 가려져 있다.

우리가 생각하기엔 이렇다. 이회창 후보의 패배는 대선자금에서 나타난 그의 비도덕성으로 보아 어쩌면 당연한 것인 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의 승리가 그같은 도덕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또한 지울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4당 대표 회동서 대선자금과 관련해 밝힌 뜬금없는 말은 이 점에서 심히 적절치 않다. “우리가 쓴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는 건 불법 자금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고 있는 것 밖에 안된다.

노 캠프의 불법자금이 얼마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뭐가 뭘 나무랄 수 없고, 액수가 많든 적든 본질은 다 같다는 사실이다. 정황적 사항으로 본질적 요인을 넘어설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대선자금 특검 수용을 시사한 것은 다분히 정략적이다. 일부 야당의 특검론 제기에 선수를 쳐 무력화 하거나, 아니면 한술 더 떠 적극적으로 대처해 대선특검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양수겸장인 것으로 해석된다. 불법자금을 파헤치면 한나라당의 치부가 파헤칠 수록이 더 드러나므로 총선 직전까지 대선특검을 해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여권은 이득이 있으면 있지, 손해볼 것은 없다고 보는 예의 역공 수법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승자든 패자든 불법자금에 대해 국민에게 보여주어야할 참다운 반성의 자세가 아니다.

이 시점에서 국민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불법자금의 규모가 얼마이든 노무현 후보가 당시 인지하고 있었는 지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다. 측근들의 불법 자금 동원이 나타나고는 있어도 측근들이 입을 다무는 한 그들의 개인비리로 끝나고 마는 것이 현 상황이다. 대통령이 이 대목을 스스로 밝히기가 어려우면 다른 말도 더이상 않는 게 도리라고 보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