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건 국회의원의 봉사활동이 세밑에 잔잔한 감동을 준다. 6·25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한 유 의원은 열살 때부터 신문 배달과 찹쌀떡 장사로 고학을 했다. 살기 어려웠던 시절의 아픔이 있는 유 의원이 13년째 남모르게 ‘선덕원’을 보살펴 온 일이 알려진 것이다.
선덕원은 부모가 없는 세 살부터 열 여덟살까지의 여자 어린이와 소녀들이 모여 살고 있는 보육원이다. 하지만 열 여덟살이 지나면 약간의 정착금을 받고 이 곳을 떠나야 한다. 200만원을 갖고 소녀들이 자립하기란 이 세상이 너무 험난하다.
퇴원하는 원생들의 진학이나 취업까지 챙겨주는 이유를 유재건 의원은 “후원회장의 애프터 서비스”라고 얼버무린다. 지난 날 중·고등학교 선생님 등 너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이제 그 빚을 조금씩 갚는 중이라는 유 의원을 선덕원 원생들은 아버지라고 부른다.
수억원, 수십억원, 수백억원의 검은 돈을 받고도 가증스럽게 국회의사당 안에서 큰소리 치고 있는 정치판을 생각하면 이런 ‘작은 이야기’가 신기하기까지 하다.
세밑에서 올 한해를 뒤돌아보면 유독 정치판은 더럽게 얼룩져 있지만, 그러나 아름다운 사람들의 따뜻한 삶이 우리 사회를 지켜줬다. 지난 26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가와 이웃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며 살아온 ‘아름다운 한국인’ 153명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었다. 이날 초청된 사람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살신성인 정신으로 이웃을 돕거나 국위선양 등으로 한국을 빛낸 주인공들이다.
이들 중 역무원 김행균 씨는 지난 여름 서울 영등포역에서 어린이를 구하고 자신은 두 발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은 사람이다.
회사원 박남이 씨는 충무로역 승강장에서 발을 헛디뎌 선로에 떨어진 노인을 구출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모습을 감췄으나 수소문 끝에 간신히 찾았다.
공익요원 송준후 씨는 부산지하철 1호선 남포동역에서 근무하던 중 전동차가 불과 10여m 앞으로 다가온 급박한 상황에서도 몸을 던져 선로에 떨어진 할머니를 구해냈다.
행정자치부 소속 김대중 씨는 아내 친구 어머니에게 자기 간을 이식해 꺼져가는 생명을 건짐으로써 질병으로 실의에 빠진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성라자로 마을에서 28년 동안 나환자를 돌보고 있는 원불교 박청수 교무, 승객이 놓고 내린 1억원이 든 지갑을 되돌려준 택시기사 이강민 씨 등의 박애정신과 의로운 행동 역시 훈훈한 미담이다.
오른 팔이 없는 장애를 딛고 올해 전국체육대회 투창종목에 출전해 은메달을 딴 허희선 씨 의지와 신념은 많은 장애인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과 함께 ‘하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했다.
집배원 박완식 씨는 노원 우체국에 근무하면서 지역 내 소년소녀 가장들과 노인들에게 친구가 돼 주었고 자신도 넉넉지 못한 처지에 ‘작은 사랑’도 실천하고 있다.
기업인의 기부 또한 이 사회를 푸르게 만들었다. 부산에서 태양사를 경영하는 송금조 사장은 부산대 발전기금으로 350억원을 내 놓은 데 이어 성실히 땀 흘려 모은 1천억원을 장학사업에 쾌척하였고, 중소기업인 이상철 사장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목숨을 잃은 딸 넋을 기리기 위해 딸 이름을 딴 도서관 건립을 위해 50억원을 사회에 기부했다.
여자프로권투 세계챔피언 이인영 씨는 가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 남자도 오르기 힘든 프로복싱 세계에서 ‘세계챔피언’이란 최고자리까지 올랐다. 강한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렇게 우리 주위에는 사회의 등불 역할을 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웃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고 있다. 올 한해 한국을 빛낸 따뜻한 삶은 앞으로 500만명, 5천만명의 선행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들의 의로운 삶은 2004년 갑신년 새해에 다시 부활하여 복음으로 울려퍼질 게 분명하다. 그렇게 믿으며 2003년을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 보낸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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