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경기

"조재현·차인표, 제대로 망가졌다!

#1. 안개 자욱한 사각의 링. ‘성난 황소’의 주제가가 흐르고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조재현. 하지만 상대의 펀치를 맞자 무참하게 나가 떨어진다.

#2. 조폭 두목의 신임을 받아 손가락에 붙은 산낙지를 빨아먹는 ‘의식’을 치루는 수철. 창 밖의 카메라는 서서 신음하는 남자와 엉덩이 부근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물고있는 수철의 실루엣을 비춘다.

사실 20일 개봉한 영화 ‘목포는 항구다’(제작 기획시대)는 그렇게 ‘비싸’ 보이지 않는 영화다. 기존 영화의 패러디는 그렇게 폼나지는 않으며 화장실 유머나 조폭코미디에서 빠질 수 없는 ‘형님 유머’ 등이 웃음의 주요 포인트다.

순둥이 경찰 수철은 폭력조직에 들어가 넘버투의 자리에 쉽게 오르고 여검사 자경은 푼수짓으로 일관하다 본의 아니게 웨이트리스 행세를 하며 조폭 두목의 애정공세를 받는다.

조폭 두목의 이름은 다름아닌 ‘성기’. ‘동상’들에게는 무섭기만 한 ‘형님’이지만 멜로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순정파다.

스토리에서의 매끄럽지 못함과 조연들의 ‘오버’ 연기, 여기에 한 두번 쯤은 이미 다른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 등 몇몇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갖는 미덕은 그런대로 관객들을 웃기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매끄럽지는 못하지만 웃음을 담은 화면을 만들어낸 감독의 연출력이 한몫 하고 있는 듯. 마치 서로 배역이 바뀐 듯 각각 조폭 두목과 형사로 연기 변신한 차인표와 조재현의 호흡도 잘 맞는 편이며 ‘느와르’의 옷을 입은 화장실 유머도 잘 어울려 보인다.

강렬한 눈빛에 꽤나 폼도 나는 강력반 형사 수철(조재현). 하지만 알고 보면 상당히 엉성하다. 뛰어난 추리력을 지녔지만 범인 앞에만 가면 작아질 뿐이고 여기 저기서 쥐어 터지기만 한다.

매사가 이런 식이니 마약 수사를 위해 조폭 조직에 잠입을 자청한 그에게 주위에서 걱정의 시선이 쏟아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가 맡은 임무는 목포의 오거리파 백성기의 조직에 잠입해 마약 거래 증거를 빼오는 것. 수백명의 ‘아그들’을 거느리고 있는 이 ‘형님’의 눈에 수철의 존재가 쉽게 들어올 리는 없다.

그러던 어느날 수철에게도 기회가 온다. 성기가 추진 중인 ‘보물선 탐사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권투 시합에 출전하는 것. 적어도 ‘폼’은 그럴듯 하니 수철은 쉽게 조직의 대표선수로 뽑힌다.

결국 수철은 우여곡절끝에 성기의 ‘총애’를 받게 되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우선 중간 보스들은 ‘낙하산’ 수철을 곱게 보지 않는데다 친 동생처럼 자신에게 정을 쏟는 성기에게 점점 매력을 느끼게 되는 데….

감독은 단편 ‘온실’로 주목받았던 신인 김지훈 감독으로 목포를 배경으로 데뷔작을 찍었지만 경상북도 대구 출신이다. 15세 관람가.

아들 죽인 아이를 곁에두고…

당신이 올리비에라면?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는 목수다. 소년원에서 출소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훈련소에서 목공기술을 가르치는 게 그의 일. 5년 전 아들을 잃어버린 상처로 아내와는 헤어졌으며 얼굴에는 더 이상 웃음이 남아있지 않다. 혼자서 저녁을 때우려던 어느 날, 그에게 전 부인이 찾아온다.

“나 재혼해, 임신했거든…” 올리비에는 집을 떠나는 부인을 뒤쫓아가 따지듯 묻는다.

“왜 하필 오늘이냐?” 사실 그날은 아들을 살해한 녀석이 그에게 찾아온 날이다.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는 ‘아들(원제 Le Fils)’에서 극단적인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바로 자신의 아이를 죽인 다른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관객이 올리비에의 입장에서 함께 고민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아내를 보낸 후 올리비에는 못 맡겠다던 ‘새로온 아이’를 맡겠다고 말해 버린다. 아이의 이름은 프란시스. 나이는 열여섯 살쯤, 키는 170㎝가 조금 안된다.

만약 당신이 올리비에라면? 더 이상의 절망도 그렇다고 별다른 삶의 희망도 없다. 아이를 없애버리고 죽은 아들의 원수를 갚아도 잃을 것은 없는 것. 왜 이 아이를 받아들였는지는 스스로도 잘 모른다.

올리비에가 차츰 알게 되는 프란시스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아버지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어머니의 새 남자 친구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면제를 먹어야 푹 잘 수 있을 만큼 수면장애도 있으며 자신이 한 ‘짓’에 대해 후회도 하고있다.

한편 프란시스는 올리비에가 자신이 죽인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올리비에에게 신뢰를 보내더니 이제는 후견인이 돼 달라는 얘기까지 하게 된다.

화면은 주인공 프란시스의 시선을 보여줄 뿐이며, 대상과 관객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지만 관객은 어느새 올리비에의 고민을 함께 하게 된다. 단순한 이야기에 소박한 스타일이지만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은 다큐멘터리적 화면이 주는 진실성 때문이다.

감독이 강요하지 않아도 관객은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행동이 도덕적인 것인가, 혹은 그렇다면 올리비에는 무슨 행동을 할까, 관객들은 끊임없이 질문과 고민을 반복하게 된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

마음도 말도 단절된

현대인의 ‘고독’ 담아내

“나만의 여유…. 산토리 타임!”

한물 간 할리우드 스타 밥 해리스(빌 머레이)가 도쿄(東京)를 찾은 것은 표면적으로 위스키 광고 출연 때문이다. 200만 달러 받고 광고도 찍고 아내와 아이로부터 벗어날 겸…. 하지만 뭔가 답답한 느낌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 소통. 촬영장에서는 감독의 지시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고 누군가가 보냈다며 호텔 방을 찾은 낯선 일본 여자는 ‘스타킹을 찢어달라’는 식으로 당황스럽게 한다. 제일 인기있다는 토크쇼에 출연해도 진행자는 원치 않는 행동을 강요하며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들 뿐이다. 이질적이고 낯선 문화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밥. 사실 이 외로움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은 아니다. 자신보다는 자식들이 우선이고 그보다는 새로 살 카펫 색깔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듯한 부인. 결혼 25년차인 그는 ‘중년의 위기’에 빠져있다.

20일 개봉한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원제 Lost in Translation)는 언뜻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들리는 한글 제목과는 달리 원제 그대로 의사소통의 단절을 담고 있다.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좀처럼 남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경험. 고독과 단절의 밑바닥까지 보여주던 감독은 고맙게도 그 틈에서 소통의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의 바다에 섬처럼 단절돼 있던 밥. 그가 소통을 시도하는 여자는 이제 막 결혼한 젊은 여자 샬롯(스칼렛 요한슨)이다.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왔지만 정작 자신은 무슨 일을 할 지 결정을 못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생소한 문화에 대한 부적응, 그리고 남편의 무관심으로 외롭기는 그녀도 마찬가지. 공허함이 가득찬 어느 밤 두 사람은 호텔 바에서 마주치고 이방인들이 가득 찬 일본 땅에서 조심스럽게 교감을 시작한다.

골든 글러브, 베니스, 시애틀, 토론토 등 가는 영화제마다 찬사를 받았으며 아카데미에서도 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 등 4개 부문에서 후보로 올라있는 등 영화가 해외에서 평론가들의 열광적인 흥분을 이끌어 낸 것은 신예 소피아 코폴라의 연출력과 빌 머레이의 열연에 있는 듯하다.

소피아 코폴라는 두번째 연출작에서 냉소로 관객들의 마음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섬세한 연출력을 보여줬으며 ‘킹핀’이나 ‘미녀 삼총사’ 등 코미디영화에 주로 출연하던 빌 머레이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의 가슴에 남을 만한 고독한 표정을 연기해 낸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딸이며 ‘대부3’에 앤디 가르시아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서른 두살의 여감독. ‘사랑도…’에서는 시나리오까지 맡았다.

약혼녀 사칭에 임신 3개월?

누가 이 여자좀 말려줘요~

어느 때부터 신세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에는 욕설과 배설물이 필수 재료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청초한 여주인공이 이슬만 머금을 것 같은 입으로 쌍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가 하면 토사물을 쏟아놓고 코딱지를 삼키기도 한다.

이러한 ‘엽기적’ 세태에 얼굴을 찌푸리던 관객들은 20일 개봉한 ‘그녀를 믿지마세요’를 한결 편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이야기는 탁월한 연기력으로 교도관과 가석방 심사위원들의 눈을 속인 사기범 영주(김하늘)가 교도소를 나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유일한 피붙이인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행 열차를 탔다가 애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러 가던 시골약사 희철(강동원)과 마주앉는다. 희철은 애인에게 선물하려던 반지를 영주 좌석 아래 떨어뜨린 뒤 주우려다 오해를 받아 흠씬 두들겨 맞는다. 영주는 희철이 반지를 소매치기 당하자 가석방 상태에서 도둑 누명을 쓸까 두려워 범인을 뒤쫓는다.

결국 반지는 되찾지만 가방을 놓아둔 채 기차를 놓치고 만다. 수소문 끝에 희철의 동네를 찾아온 영주. 희철의 가족은 그녀를 희철의 약혼자로 오해하고 한번 시작된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엄청난 해프닝을 빚어낸다.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환경과 성격의 남녀 주인공을 하나의 상황 속으로 몰아넣어 과장된 재미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는 2천년대 로맨틱 코미디인 ‘동갑내기 과외하기’나 ‘가문의 영광’과 닮았다.

그러나 ‘엽기 코드’를 덜어내고 푸근한 시골의 인심과 따뜻한 가족애를 내세웠다.

억지스러우면서도 무난한 구성과 어설픈 듯하면서도 과장된 캐릭터는 장점이자 단점.

‘푼수데기’ 코믹 배우로 변신한 김하늘과 ‘꽃미남’ 강동원이 순진한 시골 약사로 등장해 수난을 당하는 장면을 보는 것도 즐겁다.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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