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

"독일통일 전 서독외교의 최대 업적은 전세계를 상대로 두 번이나 전쟁을 일으켰던 전범국가로서의 이미지를 벗도록 한 브란트 총리에서 찾게 된다. 그는 1970년 12월 바르샤바를 방문해 나치희생자 묘역 앞에 무릎을 꿇고 폴란드인에게 용서를 구했다. 이 사건으로 폴란드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였다.

브란트의 이런 결단은 1989년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고 통일의 가능성이 무르익어가는 상황 속의 서독정부에 이어졌다. 겐셔 외무장관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동독 사태로 불안해하던 폴란드와 주변국들에 과거 전범국의 반성을 재확인하고 미래에 대한 독일민족의 책임감을 분명히 했다.

“폴란드 민족은 50년 전에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의 최대 피해자입니다. 폴란드 국민은 이제는 안전한 국경을 보장받고 그 안에서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독일민족은 가해자입니다. 가해자인 우리가 폴란드 국경을 재론하며 과거영토에 대한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한 슬픈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폴란드와 함께 미래의 보다 나은 유럽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현 국경에 대한 보장은 유럽의 평화공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 될 것입니다.”

국제사회를 향한 겐셔 장관의 고백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러시아의 고르바초프의 마음을 움직였다. 향후 독일문제는 독일민족 스스로 해결하는 데 미·러 두 강대국이 동의해준 것이다. 이를 계기로 독일통일의 가능성이 활짝 열렸고 영국, 프랑스, 폴란드의 양보도 얻었다.

특히 서독정부는 새로운 삶을 찾아 목숨을 걸고 동독을 탈출하는 동포들에게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일은 동족으로서 당연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동독에서 내버리다시피 한 병약자와 노인들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양심수와 정치범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천문학적 비용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것은 곧 서독사회가 진리, 자유, 그리고 인권의 편에 섰다는 증거들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가 배워야 할 과거 서독의 정책이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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