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스런 세태

“○○○님! 저(A) 오늘 몸이 아파서 조퇴할까 합니다” ○○○은 흔쾌히 허락한다 “그래! 건강이 제일이지….”

“○○○님! 저(B) 오늘 몸이 아파서 조퇴할까 합니다” ○○○은 아연 진노한다. “무슨 소리야? 조직생활을 그 따위로 해서 되나?” (흔히 있는 사례다)

A와 B에 대한 차이는 A는 측근이고 B는 비측근인 데 있다. A와 B를 경우로 대하는 것이 아니고 정실로 대하는 것이다. 조퇴가 가하고 불가하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A에게 허락하였으면 B도 허락해야 하고, B에게 허락하지 않았으면 A도 허락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조직생활의 잣대는 하나이어야 한다. 이런 조직의 잣대가 아닌 사람에 따라 다른 여러개의 잣대는 조직 자체를 망가 뜨린다. 조직도 인간의 구성체여서 사람에 따라 더 친한 사람도 있고 덜 친한 사람도 있고, 좀 미운 사람도 있으며 아주 미운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개인의 정서가 조직의 잣대를 우선해서는 그 재앙이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간다.

또 무슨 구체적 잘못에 충고를 하면 제 잘못을 돌아볼 생각은 않고 말해주는 상대를 마치 원수대하듯이 하려든다. 충고하는 사람이 윗사람일 것 같으면 “저나 잘하지…”하고, 아래 사람일 것 같으면 “건방지다…”며 욕한다. 이래서는 비판이 있을 수 없고 비판이 활성화 하지못한 조직에서는 아첨만 횡행한다.

조직의 잣대와 비판 기능은 함수관계다. 잣대가 엄정하면 건설적 비판 기능이 활성화하고 반대로 그렇지 못하면 조직의 이완을 가져온다. 공동 목표의 구심점 속에서 각기의 의견, 즉 다른 생각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조직이다.

국가나 사회나 기업이나 다 마찬가지다. 작금의 국가사회가 독선으로 치닫는 풍조는 가히 폭력적이다. 잣대가 달라 상대에 따라 총애하고 저주하는 수위가 지나치고, 비판기능을 위장한 아부가 횡행하고, 충고는 곧 역적으로 몰리는 세태의 미래가 무척 우려스럽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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