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분계선상의 대북·대남 확성기가 15일 자정을 기해 꺼졌다. 상호 비방방송이 중단됐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근해에서는 남북 함정간에 첫 교신이 시작됐다. “백두산 하나, 백두산 하나, 여기는 한라산 하나” “한라산 하나, 한라산 하나, 여기는 백두산 하나” 한라산은 남쪽, 백두산은 북쪽을 지칭한다. 서해 충돌을 막기위한 무선통신·시각신호 체제가 공식 운영돼 연평도 어민들의 큰 시름을 덜게되었다.
6·15 남북공동선언 4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한 북측 대표단 등 130여명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와 한반도기의 물결을 이루었다. 인천시청 중앙홀에선 북측 대표단 환영만찬이 성대하게 열렸다. 서울 그랜드 힐튼호텔에서는 김대중도서관, 북측 통일문제연구소 등이 공동개최한 ‘6·15 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가 있었다. 북측 대표단은 이어 오늘 삼성전자를 방문한다.
교류의 홍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잔인한 6월에 밀어닥친 이같은 교류의 홍수는 북측도 서서히 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미 오래 전에 생긴 암시장, 평양거리에 등장한 노점상은 사회주의 한계성의 이탈 조짐이다. 평양정권이 잘 살기위해 변화를 모색하면서도 중국처럼 선뜻 개혁·개방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은 체제 특유의 폐쇄성 때문이다. 평양정권은 이같은 갈등 속에서 부분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본질적 변화가 아닌 지엽적 변화이긴 하나 동토의 땅이 이렇게라도 녹는 것은 어떻든 녹는 것이다. 통일을 말한다. 남북간에, 민족간에 통일 이상으로 가치성이 있는 것은 없다. 지상명제다. 그럼, 어떤 체제의 통일을 하자는 건가, 남은 북의 체제를 그리고 북은 남의 체제를 거부한다. 성급한 통일론은 체제의 충돌을 불러 일으킨다. 지금은 통일보다 평화공존, 공영공존이 더 중요하다. 남북간의 자유왕래까지 가는 상호신뢰가 쌓이면 이 또한 정치적 통일은 비록 못될 지라도 사실상의 생활통일은 이룩되는 셈이다. 우리는 장차 이같은 신뢰가 담보되기를 희구한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6월의 교류 홍수에 아무리 한반도기가 나부끼고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가 취해져도 이는 신뢰로 가는 진일보일 뿐 신뢰가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북은 종국적으로 개혁·개방에 나서야 한다. 중국은 그 모델이다. 6월의 비극을 한반도기 감상에 젖어 잊는 일이 없어야 평화를 이룩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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