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리더십과 권위주의는 혼돈하기 쉽지만 구분이 결코 어려운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강력해야 한다. 국정의 최고 책임을 지는 대통령부터가 우왕좌왕 해서는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권위주의로 임해서는 파탄을 불러 일으키기 십상이다. 리더십은 객관화된 경륜이고 권위주의는 주관적 아집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으로 업무에 복귀한 노무현 대통령이 현저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국무회의에서 가진 송광수 검찰총장의 공개적 폄훼, 신행정수도 후보지 선정의 밀어붙이기 등은 그런 사례에 속한다. 송 총장의 검찰 무력화 발언의 발단이 된 ‘고위 공직자 비리조사처’란 것도 객관적 설득력이 지극히 빈곤하다. 대통령직속의 부패방지위원회안에 이런 기구를 두겠다는 것은 검찰 수사권 일부를 대통령이 직접 장악하겠다는 거나 다름이 없다. 검찰수사의 독립성을 해친다. 이야말로 크게 보아 국가 기강을 문란케하는 기소독점주의의 원칙적 침해다.
검찰개혁은 마땅히 요구된다. 수사기법의 나쁜 관행 같은 것은 이젠 시정돼야 하고 이밖에도 고칠점은 많다. 하지만 검찰 본연의 소임을 대통령직속으로 가져가는 게 검찰개혁이랄 수는 없다. 천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신행정수도에 대한 반대 여론이 확산되기가 바쁘게 후보지란 것을 서둘러 발표하는 건 독주다. 포괄적 인지사항에 불과한 대선공약을 개별적 승인사항으로 오도하는 것은 명백한 논리의 비약이다. 신행정수도로 포장된 천도에 그토록 자신있는 명분을 가졌다면 국민투표를 굳이 거부해서도 안된다. 이 어려운 시대에 이 바쁜 시기에 어림잡기도 어려운 천문학적 수치의 재정을 부담해가며 우기는 독주가 가져올 국가적 후유증과 역기능에 전율을 느낀다.
검찰기능을 앗아가는 것이 개혁은 아니고, 역사발전을 발목잡는 신행정수도 이전 또한 개혁이 아니다. 이를 수구보수의 반대로 매도한다면 진보개혁의 실체가 뭣인지를 묻는다.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대통령을 희구한다. 그러나 위세를 앞세우는 권위주의는 거부한다. 과거의 권위주의 정권을 비판해온 이 정권이 신권위주의로 가는 것은 실로 유감이다. 민중은 이제 지쳐 피곤하다. 대통령은 순리를 두고 역리로 가는 것이 국익을 위한 것인 가를 깊이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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