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은 반세기 넘어 군사적 대치를 해오고 있다. 무력 도발의 위험이 가장 높은 상대가 동포라는 사실은 참으로 불행하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웬 전쟁 걱정이냐는 감상론은 무책임하다. 6·25 한국전쟁도 그같은 생각을 갖는 가운데서 발발했다. 정부는 국방부의 국방백서 등 공개문서에서 북측에 대한 주적 용어를 안 쓸것이라고 한다. 일종의 북측 달래기다. 북은 그동안 주적이란 표현을 트집 잡아 왔다.
그러나 주적 표현을 삭제한다 하여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는 “북한이 최대 위협의 적이라는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북에 대응하는 군의 태세에도 바뀌는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비록 주적의 용어는 쓰지 않아도 주적은 상존하는 것이다. 남북간의 여러 교류·협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분야가 군사 관계다. 전쟁 위험의 점진적 해소 등 실질적 긴장 완화가 곧 군사관계의 진전에 달렸다. 이 점에서 북측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침범은 한달 앞서 가진 장성급 군사회담의 합의 사항을 부정하려는 것으로 보여 심히 유감이다.
엊그제 NLL을 침범한 북측 경비정은 14분만에 되돌아가게 한 해군의 함포 경고사격 이전에 수차 시도한 핫라인 호출에도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핫라인 개통 보름만에 응답을 기피하기 시작하여 먹통이더니 한달만인 이젠 아예 NLL 침범까지 노골화하였다. 실로 우여곡절 끝에 모처럼 가진 첫 장성급 군사회담의 합의사항 마저 이토록 휴지화해서는 군사대치의 긴장 완화란 참으로 요원하다.
북은 남쪽의 주적 표현을 힐난해 오면서도 로동당 규약이 정하고 있는 이른바 ‘남반부 해방의 혁명 과업 완수’는 아직도 지표로 삼고 있다. 주적은 상대에 대한 방어적 개념인데 비해 남반부 해방은 공격적 개념이다. 공격적 개념에 우선할 수 없는 방어적 개념의 주적 표현이지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이를 삭제한다면 굳이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주적 용어 삭제가 군의 사기나 정신상태의 이완 계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군 만이 아니다. 국민사회 역시 대북 경각심이 늦춰져서는 안된다. 만약 주적 용어 삭제를 기회 삼아 이완을 책동하는 일부의 세력이 있으면 그들이 누구인 지를 경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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