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十字架)’는 고대 서양에서 죄인을 처형하던 ‘十’자 모양의 형틀이지만, 그보다는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신성시(神聖視) 한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고난을 떠맡는다’는 말이다. 또 ‘십자고상(十字苦像)’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수난을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상이다. 십자가는 거룩한 사랑, 거룩한 희생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난 6월12일 열린 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서 북한이 ‘군사분계선상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와 함께 우리측 종교시설물에 대한 이전을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군사분계선 남측 지역에 위치한 십자가 및 점등탑 등의 이전 및 철거가 불가피하게 됐다고 한다.
국방부는 그동안 종교시설이 민간시설이기 때문에 군이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며 맞서 왔다. 그러나 저번 군사회담에서 북측이 종교시설물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줄 것을 요구해와 우리측이 우선 가림판을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성탄절을 기해 지역교회의 기도와 물질 후원으로 실시되던 전방부대 크리스마스 점등 행사도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또 임진강변의 십자가를 비롯해 전방지역 군인교회나 기타 십자가 탑, 교회 시설물 등도 철거되고 서부전선 최전방의 애기봉에 설치된 30m 높이의 철탑이 북측의 눈에 띄지 않는 제3의 장소로 옮겨지거나 아예 철거할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십자가와 크리스마스 트리 등은 남북한 군인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의 정서적 안정과 종교적 심성을 키워주는 시설물인데 북측이 정치선전물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무리다.
북한은 남북선전중지 합의 후에도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은 반미자주화의 주 타격대상인 미제와 반파쑈민주화의 주 타격대상인 남조선괴뢰도당을 타격목표로 한다”고 선동하고 있다. 북한이 보여주는 제반 유화적인 제안이나 행태는 모두 전술적인 것이지 전략적 변화는 아닌 듯 싶은데 국방부는 선전수단 제거 시한인 8월15일까지 십자가에 가림판을 설치할 모양이다. 남한이 너무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닌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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