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운
농진청 농업기술상담위원
산소배출·공기정화 때론 쉼터주는 ‘굴뚝없는 공장’
올 여름은 참 더웠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낮에는 아직도 기온이 섭씨 30도를 넘는다. 밤에까지도 더위가 계속된다. 사람들이 입을 열면 “아이 더워!”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이들일수록 더 그런다.
이런 더운 날, 햇빛이 쏟아지는 들판을 바라보자. 벼가 빽빽하게 들어선 논을 바라보자.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여름날의 논은 커다란 공장이다. 굴뚝 없는 큰 공장이다. 사실은 굴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수히 많은 작은 굴뚝들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그 굴뚝에서 나오는 것은 보통 공장들의 굴뚝에서 나오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보통 공장의 굴뚝들에서는 탄산가스와 황산가스, 질산가스, 탄소입자 같은 것들처럼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나오지만, 벼 잎에 달린 무수히 많은 굴뚝들에서는 산소, 즉 사람을 포함한 많은 생물들 숨을 쉬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산소가 나온다. 보통 공장의 굴뚝들에서 나오는 것은 공기를 더럽힘에 반해 살아 있는 벼 잎에서 나오는 것은 더럽혀진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더운 날 논에서 자라고 있는 벼 잎이 하는 일은 공기에 소중한 산소를 내보내는 일만이 아니다. 살아 있는 벼 잎은 공기에 들어 있는 탄산가스를 빨아들여 사람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생물들에 꼭 필요한 에너지가 들어 있는 탄수화물을 만든다. 즉 더운 날 살아 있는 벼 잎은 공기에 너무 많으면 해로울 수 있는 탄산가스를 빨아들여 공기를 신선하게 만드는 산소를 내보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일을 하기 위해 벼 잎은 무슨 건물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무슨 연료 같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또 사람이 줄곧 곁에 서서 무슨 일을 거들어 줄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벼 잎이 제 일을 하는 제대로 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햇빛과 섭씨 25도~30도 정도의 온도와 물과 벼를 쓰러지지 않게 잡아주고 벼에 필요한 양분을 공급해줄 수 있는 흙이 있으면 되고 잡초와 해충과 병을 막는 일을 해주면 된다.
살아 있는 벼 잎이 공기로부터 탄산가스를 빨아들여 물과 작용시켜 탄수화물을 만들면서 산소를 공기로 내보내는 작용을 광합성(光合成) 또는 탄소동화작용(炭素同化作用)이라고 한다. 왜 똑같은 작용을 광합성이라고 또는 탄소동화작용이라고 다르게 부를까? 벼 잎에서 탄산가스와 물로부터 탄수화물이 만들어질 때 태양의 에너지가 탄수화물 속에 저장되는 면을 강조할 때에는 광합성이란 말을 쓰고, 공기 중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탄산가스를 쉽게 움직일 수 없는 탄수화물로 만들어 식물의 한 부분이 되게 한다는 면을 강조할 때에는 탄소동화작용이라는 말을 쓴다.
광합성이라고 부르든, 탄소동화작용이라고 부르든 더운 여름날 논에 자라고 있는 벼 잎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놀랍고도 중요한 일이다. 그 일이 일어남으로써 우리는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고, 또 여러 공장의 굴뚝들에서, 수많은 자동차, 기차, 비행기, 선박(船泊)들에서 많은 양의 탄산가스가 쉬지 않고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공기 중의 탄산가스가 증가하지도 않고 산소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논에 있는 벼만 이런 중요한 일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100만 정보(町步: 1 정보는 3000 평)의 논에서 일어나고 있을 이 중요한 일에 대해 생각하며 잠시 더위의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 더운 날 들에서 땀을 흘리며 일할 농사지으시는 분들의 노고도 생각해본다면 덥다고 호들갑을 떠는 일이 부끄러워지기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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