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닿는 사원마다 크신 부처님들 반겨
비엔티안은 400년간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라오스의 수도다. 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독립 기념탑부터 찾아본다.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을 지배했던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해 만들어 놓았으니, 나그네 마음을 몹시 안타깝게 한다. 탑 꼭대기에서 바라본 시내는, 사방으로 비교적 넓은 도로가 뚫려 있다. 하지만 북부 산간 지방에 비해 날씨도 덥고 무언가 어수선하다. PATHOUMPHON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아래 신발을 벗어두고 맨 발로 들어가야 한다.
사원이나 왕궁은 이해할 수 있다지만, 여인숙까지 맨발로 들어가기엔 심기에 다소 불편이 온다. 우리가 묵고있는 숙소의 뒷골목은 ‘꿈의 궁전’이라는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 마치 방콕 카우산 로드의 홍익인간과 같은 곳이다. 오늘 저녁은 풀벌레 소리 들려오는 메콩 강변의 노천 카페에서 식사를 한다. 시커먼 강의 풀숲을 바라보던 방별이 갑자기 자신의 지난날을 얘기하신다. ROTC 장교로 군 복무를 했으며 울진 삼척 무장공비 소탕 작전에 투입되었던 얘기는, 지휘관으로서 강한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다. 그의 꿈 같은 젊은 날을 듣다가 나의 지난날이 교차되어 추억의 심연에 빠진다. 적당한 라오 비어를 마시는 것과, 알맞은 여수(旅愁)의 시간을 보낸다. 오늘밤은 잊혀진 꿈의 기억처럼, 낯설지만 아스라이 깊고 검게 침몰하리라.
이른 아침 비엔티안을 깨운다. 오늘은 자전거를 빌려 시내 투어를 할 것이다. 낮고 안장이 찢어진 자전거가 조금 불편하지만 시내 투어엔 적격이다. 메콩강변의 파응움로드를 따라 고풍스러운 담을 끼고 돌면 포도위로 낙엽(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이 곳은 시도 때도 없이 수수한 색깔의 잎이 쉰 머리칼 빠지듯 떨어진다)이 나뒹굴고 호파케우 사원이 나온다. 이 사원은 왕실의 전용 사원이었지만, 지금은 왕실의 불교 유물 등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다. 방콕의 왕궁에 있는 에메랄드 불상이 원래 이 곳에 모셔져 있었는데 전쟁에서 빼앗겼다고 한다. 태국의 몇 차례 침략으로 붕괴된 것을 재 건축 한 탓일까? 400여년의 역사보다 더 늙어 보이지만, 풍상을 겪은 만큼 여유와 운치를 풍긴다. 전시장 외벽을 둘러싼 불상은 우리나라의 미륵 반가사유상과 비슷하지만, 느낌은 택도 없는 것을, 뭐가 그리 좋은지 K공주는 그 옆에서 계속 포즈를 취한다. 내 눈에는 본존불 우측 두 개의 압사라가 호감이 간다. K는 장시간 두리번거리며 나올 생각을 않는다. 아마 이곳이 왕궁터인지라 진짜로 이곳을 그리워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운 가운데, 다시 시사켓 사원으로 향한다. 이 사원은 사방으로 6천800여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비엔티안에 현존하는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사원 본당 내의 본존상 마루에 텅 빈 마음으로 앉아 잠시 묵상한다. 이처럼 편안해 보기도 드물었던 세월이었다. 온갖 새 소리 풀벌레소리가 들려오고, 스치는 바람은 여름 방학 때 놀러간 외할머니댁 마루에서 동화책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사원 입구에 아이스크림 장수가 촌스럽게 서 있다. 옛 생각이 난다. 나는 아이스크림 통 앞에서 초등학생이 되어 구겨진 낡은 지폐를 꺼낸다. 아이스크림이 달콤하게 입 속에서 녹고, 감미로운 옛 맛은 추억 속을 헤엄친다.
탓 루앙 사원은 거대한 황금색 탑만 해도 라오스를 대표할 만한 사원이라 할 수 있다. 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다시 건축한 탓일까? 사방의 회랑에 각종 불교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목 잘린 것이 많다. 이 사원은 특히 부처의 가슴뼈가 묻혀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분명치 않아 화가 났다. 이럴 땐 믿거나 말거나라는 단서를 붙여야 할 것이 아닌가. 다시 아침 시장으로 향한다. 이 곳은 우리나라 동대문 시장을 방불케 하는 대형 종합상가이며 주로 공산품을 파는 곳이다. 주차장은 차로 가득하고 자전거를 세워두는데도 돈을 주어야 한다. K를 따라 구경하다가 지쳐 도망 나온다. 남자는 역시 쇼핑 체질이 아닌가 보다. 대신 1층 식당에서 국수 한 그릇을 사먹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곳을 나온다. 피로가 몰려오고 땀이 쏟아지기 시작하지만 다시 한 낮의 거리에 나선다. 이번엔 혁명 박물관이다. 라오스의 고대사와 근 현대사의 격정적 역사를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을 둘러보면 그들도 우리처럼 외세의 침략으로 처참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느낀다. K가 갑자기 전시해 놓은 금수레(왕이나 왕비가 탔을 법한)위에 올라 폼을 잡는다. 아무래도 그녀는 공주병이 도진 듯하다. 나는 황급히 자전거에 올라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 됐다는 탓담(검은 탑)으로 향한다. 한적한 곳의 길 가운데 버려진 채 서있는 이 탑의 기단 부는, 우리나라 안동의 전탑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중반부 위의 탑신과 첨탑은 전형적인 라오스의 조형미를 보여준다. 라오스의 탑들은 대부분 시멘트로 만들어져 있는데 언뜻 보면 돌로 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아무튼 탓담은 온갖 잡초가 무성한 채 초라하게 서있지만 그 자체가 매력을 준다. 자전거의 홍수 속에 끼어 저녁 시장으로 달린다. 우리나라의 재래 시장 같은 곳인데 엄청나게 크다. 채소, 과일, 생선, 고기 등 식료품이 주종을 이룬다. 냉장시설이 일반화되지 않아서일까? 냄새가 역하다. 엄청 진한 냄새를 주도하는 젓갈은 색깔도 흉측하다. 바다가 없는 내륙 지방인지라 젓갈 문화가 발달돼 있는데 대부분 액젓이다. 한번 찍어 먹어 봤더니 엄청 짜다. 오늘저녁은 닭백숙을 해 먹어야지. 보기에도 질겨 보이는 닭 한 마리를 손질하고 마늘과 생강 등을 준비한다. 게스트하우스 종업원 아가씨는 나의 닭백숙 요리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숯불 위에 큰솥을 걸어주고 물을 채워 주는 등 잘도 도와준다. 숯불에 삶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화력이 대단하여 금방 끓는다. 여기에다 인근의 밥집(이 곳에선 밥도 패스트푸드다)에서 찹쌀밥(라오스에선 안남미를 먹지 않는다. 카우냐우라고 하는 찹쌀밥을 먹는다)을 사와 함께 삶으니 인삼만 빠졌지 맛은 백숙에 진배없다. 한 그릇씩 퍼먹는데 닭은 질겨 도저히 먹을 수 없다. 장 구경에 닭 요리에, 오늘밤은 녹초가 되어 취침 길에 오른다.
해는 또다시 떠오르고 오늘은 정든 라오스를 떠나는 날이다. 비행기 탑승시간까지 시앙쿠안 사원을 보기로 한다. 사원이라지만 수언풋(부처공원)이라는 별칭이 더 어울리는 분위기이다. 불교 힌두교의 가르침을 형상화한 각종 조각상은 거대하고 다소 그로데스크한 느낌이지만 시멘트로 만든 것이어서 깊은 맛은 없다. 다만 단순화 된 각종 조각상이 무채색으로 돼있어 50년의 짧은 세월에도 고풍스러움은 돌 같은 느낌을 준다. 이 곳은 일반인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그 명단 속에는 한국인의 이름도 보였다. 돌아오는 차가 비엔티안 시내에 접어들고 호바케우 사원에 다다를 때 갑자기 K가 차에서 내린다. 그는 공주 본색으로 왕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강변에서 점심을 시켜먹고, 독서하며 잠시 한인(閑人)이 된다. 옆 테이블에 앉은 한국인들이 낮술을 마시며 떠들어대는 것이, 여기가 메콩강이라는 걸 잊게 한다. 라오스를 정리 할 시간을 다 써버리고 베트남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오른다. 1시간 40분 가량 지나면 나는 하노이에 도착할 것이다. 내 인생과 결별하듯 세상 밖 먼 곳으로 아무리 벗어나도, 추락의 날개는 결국 지상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으리라. 나는 다시 삶에서 밀려나기 싫은 무모한 야심으로 애를 태우며, 하루 하루를 지워 갈 것이다. 이런 질투를 하며….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워 보았으니/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leehg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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