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感/추계 최은희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로 알려진 최은희 선생은 기자로서 뿐만 아니라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고, 여성단체를 조직해 여성운동에 적극적이었으며 노년의 왕성한 집필활동 등 여성으로서 선각자적인 삶을 살았다.

이는 추계 문화사업회(회장 김진봉)가 추계 최은희(秋溪 崔恩喜·1904~1984)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3일 서울 덕성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집중 조명됐다.

이날 행사는 장영란씨(민주평통 지역협력분과위 간사)의 ‘최은희 여사 약력 보고’와 김후란 최은희 여기자상 심사위원장의 ‘최은희 여사의 회고’에 이어 학술발표가 진행됐다.

수원대 이성근 교수의 사회로 열린 학술회의에선 노영희 교수(동덕여대 일문과)의 ‘추계 최은희 선생의 삶과 사상’과, 이배용 교수(이화여대 사학과)의 ‘여성 지위향상의 길을 닦은 최은희’란 주제발표가 있었다. 토론자로는 신경숙 한성대 국문과 교수와 박무영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참여했다.

먼저 노영희 교수는 추계의 발자취를 유년시대, 항일정신을 꽃피운 학창시절,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인 기자시절, 다양한 여성운동시대, ‘한국근대여성사’ 집필시대로 나누어 조명했다.

노 교수는 “추계는 일제 치하에 성장해 3·1만세운동에 뛰어들어 옥고를 치른 바 있으며 그의 삶은 여성의 항일운동 역사이기도 하다”면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선각자적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21살에 조선일보에 입사, 한국 최초의 여기자가 된 추계는 정치부, 사회부, 학예부를 거쳐 학예부장을 지냈으며 탁월한 실력으로 여기자의 사회적 위상을 뚜렸하게 정립했다. 그는 기자생활 이후에는 여성단체 ‘근우회’를 조직하는 등 여성계몽운동과 여권신장운동을 펼쳤으며, 5월8일 어머니 날 제정 운동을 펼쳐 성과를 거둬냈다.

노 교수는 “추계는 독립운동과 사회운동, 여성계몽운동, 애국운동과 근대여성사의 정리에 이르기까지 각 방면에 걸쳐 놀라운 삶의 발자취를 남긴 여성”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배용 교수는 ‘여성지위 향상에 길을 닦은 최은희’란 발제문에서 추계의 여성단체조직과 여성의 사회참여, 전문직업인으로서 여성의 역할 등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이 교수는 “추계는 기자로서 다방면에 걸쳐 활약상을 보였는데 부인견학단을 조직해 여성들의 사회화에 힘썼으며, ‘첫길에 앞장선 이들’이란 꼭지를 통해 신여성인물을 26회에 걸쳐 연재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성단체조직과 여성의 사회참여에 앞장선 추계를 조명했다. 추계는 1927년 여성통합조직 근우회를 설립하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법률적 차별과 인신매매, 공창 폐지 등을 주장하며, 본격적인 여성운동을 주도했다.

이 교수는 “봉건적 가부장제와 근대적 식민지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운동을 펼쳤던 최고의 여성운동가”라고 평했다.

추계는 광복 후 여권 운동자 클럽을 조직, ‘여학교 교장은 여자로’ 등의 운동을 벌여 경기여고와 무학여고, 여자사범에 여성교장들을 임명하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또 대한부인회와 조국수호국민협의회, 영신 아카데미 등에도 적극 참여했다.

이 교수는 “추계는 시대가 필요할 때 여성단체를 조직했으며, 이는 여성들의 힘을 뭉쳐 사회 세력화함으로써 여성지휘 향상에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말년에는 왕성한 집필활동을 했는데 ‘한국근대여성사’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 근대여성사로 평가받고 있다./이형복기자 bo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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