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젊은 예술가는 ‘희망의 씨앗’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문화의 시대라 한다. 그렇다면 경기지역에서 우리는 무엇을 문화라 할 것이며 또 어떤 형태의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을까?

이미 관습화된 시대적 테두리 안에서 답하기는 그리 어려울 것은 없을 듯한데 정작 삶을 튼실하게 지탱해 주는 살아 있는 생활로서의 미술문화를 살펴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이미지 과잉 공급 시대에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 버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저 우리의 영역 안에서 시대의 확장과 변화를 묵묵히 외면한 채 지나친 ‘문화 도덕주의’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꿰뚫어 보는 직관력과 그 사회의 여러 양태를 담아내는 표현이 문예사조로써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 경기도는 서울과 공동 생활권이자 물리적으로 나뉜 지리적 공간 말고는 그 경계나 틈이 모호한 상황에서 기성세대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새로운 세대는 세월따라 거짓말처럼 가고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 주는 것이 세상사다. 해마다 수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그 젊은 재원들은 지역 어디에 있을까? 무엇으로 이 작가들을 이 지역에서 창작에 매진케 할 것이며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일회적 소비 형태를 보이고 있는 문화 지원정책이나 전시문화에서 벗어나 일관되고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역 문화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전문 인력을 확보한 단체의 지원방식 변화나 치열하게 고독한 싸움으로 일관한 작가들이 태동하고 있다. 이제까지 블록화된 예술시스템 내에서 보았던 것과 확연히 다른 무엇이 있음을 보고 이 지역에 ‘희망의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뚜벅이처럼 정직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이들의 담론이나 실험정신이 이 사회의 문화 주류로 성장하기 바란다. 이들 중 그 누구는 핵심적인 존재로 자리 잡아 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들이 주류로 성장할때 사회와 그 주변을 변화시킨다. 이에 전문적 집단주의는 꼭 필요하다. 이기적 집단주의나 지나친 나 홀로 문화도덕주의는 미술을 사회와 격리시킬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와 시도를 이끌어 내는 새로운 소통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적 소통 중심에는 열어주는 자가 있어야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진다. 새로움이란 작금의 체계에 대한 반향으로 시작되고 지속된다. 혼돈과 위기의식이 없는 시대가 있었는가?

필자가 원하는 것은 이미 주어진 사고나 제도화된 것에 대한 논의를 이 지역 내의 문화적 현장성에 의거하여 충분한 논의를 거쳐 사회와 대중과의 새로운 접속코드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블록화된 틀 속에서 안주하기보다 과감히 문호를 개방해 새로운 세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물꼬를 터 주자. 시대의 흐름을 읽는 안목은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온라인·오프라인을 일상으로 체득한 젊은 세대들이 유입되어 새로운 자극을 주고 이 지역 내에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 달음박질에는 사람마다 뛰어가는 속도 차이가 있다. 사회적 활동의 주류가 아니라 해서 사장되어 버리는 것은 아니다.

미술 안에서도 사회적 흐름에 따라 전이 되어 갈 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다방면의 유형적 흐름이 있다. 다급한 시대, 이념적 혼돈의 거품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고 내면의 정신적 가치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과 헌신을 통해 외형적 지역문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

끝으로 경기문화재단, 수원시 등에 종사하는 전문 인력들에게 바란다. 이 지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프로그램 개발을 실행하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제일 먼저 이해관계를 떠나 이 아우라 안에 들어와 있는 총체적 인력지도(예술인DB)부터 만들어 보기를 제안한다. 모든 일에는 사람이 그 시작이고 끝이 아닐까?

/안택근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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