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 ALEXANDER
다이내믹·장대함의 결정체 ‘고대 전투신’ 놓치면 후회
‘Fortune favors the bold(운명의 여신은 용감한 자의 편이다)’. 영화 ‘알렉산더’를 상징하는 대사다.
영화는 자신 앞에 놓인 미지의 길을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헤쳐나갔던 영웅 알렉산더를 추앙했다.
뉴욕대학 시절 그리스신화를 전공한 올리버 스톤 감독은 수십년간 머릿 속에 그려왔던 알렉산더의 이미지를 스크린으로 옮기는데 마침내 성공했다.
제작기간 3년간 2억4천만달러(약 2천539억원)을 쓰면서 7개국을 돌며 촬영했다.
덕분에 영화는 ‘트로이’ 이후 그 이상의 어떤 고대 전투신이 등장할까 궁금해하던 관객들에게 또한번 새로운 전투신을 선사하는데 성공했다.
마치 비행기가 착륙할 때 발 아래의 인간세상이 개미의 그것처럼 보이듯, 영화는 창공을 당당하게 나는 독수리의 시선으로 발아래 거대하게 펼쳐진 전투를 마치파도가 오가면서 해변에 남기는 흔적처럼 독특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초반에 등장하는 ‘가우가멜라 전투’가 그것인데, 이 장면은 결코 할리우드의 자본력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블록버스터와 스톤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제대로 접점을 찾은 장면이다.
인간의 시선으로 돌아가면 지상에서는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격렬한 육박전이 숨돌릴 틈 없이 펼쳐지고 있지만, 창공을 나는 독수리의 시선에서는 거대한 군대의 움직임이 한낱 바람에 그 형태가 좌우되는 사막의 모래알갱이인 것. 영화는 이러한 대비되는 시선의 교차편집을 통해 숨막히는 재미를 안겨준다.
문제는 그러한 그의 의지와 상업영화의 재미가 이 정도에서 결별을 한다는 것이다.
‘JKF’ ‘7월 4일생’ ‘플래툰’ 등 뚜렷한 정치적·사회적 색채가 짙은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스톤과 블록버스터의 결합은 영 매끄럽지 못하다.
스톤은 할리우드블록버스터들의 ‘얄팍한’(스스로의 생각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상술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의미있고 진지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지만, 결과는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오락영화도 아닌 어정쩡한 3시간 짜리 영상으로 탄생하고 말았다. 물론 공을 들인 전투신과 고색창연하게 복원한 기원전의 세상이 볼거리를 준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인생을 가감없이 보여주겠다는 스톤의 야심은 기름기가 싹 빠진 닭가슴살처럼 퍽퍽하다. 또한 시종 설교적이다. 결정적으로 미스 캐스팅에서 빚어진 불협화음이 관객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
‘트로이’가 브래드 피트를 캐스팅한 것만으로 당당해보였던 것과 대조되는데, 실제 알렉산더의 몸집이 콜린 파렐처럼 작았다할지라도 파렐의 캐스팅은 일반인들의 생각을 배반한다.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는 어찌됐든 거대하고 당당한 장수의 이미지. 적어도 상업 영화에서는 그런 바람에 부합해야하는데 파렐은 그러기에는 너무나 왜소하다.
또한 안젤리나 졸리가 그의 어머니 올림피아로 등장하는 것도 코웃음을 자아낸다. 알렉산더의 부인이 되도 시원찮을판에 어머니로 등장하니, 일부러 구사하는 ‘마케도니아식 영어 억양’과 겹쳐 스크린에 스며들지 못한다.
세계 제패의 대망을 안고 8년간 350만㎞를 거침없이 나아간 알렉산더.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양성애자의 모습과 아버지의 사랑에 굶주렸던 나약한 모습이 놓여있다. 이렇듯 ‘복잡한’ 인생을 겨우 서른세해 동안에 그린 그이기에 스톤으로서는 여러가지가 욕심이 났을 것이다. 31일 개봉, 15세 관람가.
■내셔널 트레져 … NATIONAL TREASURE
니콜라스 케이지의 내한으로 한껏 분위기가 고조된 ‘내셔널 트레져’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어드벤처 블록버스터다. ‘진주만’ ‘콘에어’ ‘더록’ ‘아마겟돈’ 등을 만든 블록버스터의 대부 제리 부룩 하이머가 제작자라는 것만으로도 그 성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탐험의 선봉에 서면서 오락 어드벤처 영화로서의 구색을 성실히 갖춘 듯 하다.
내용 역시 남녀노소에게 너무나 익숙한 보물찾기. 덕분에 이 영화는 미국개봉에서 3주 연속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는 위용을 과시했다.
미국 건국 초기 대통령들이 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을 3대째 찾고 있는 게이츠 가문의 후손 벤저민(니콜라스 케이지 분)은 그의 아버지조차 포기한 보물찾기에 여전히 혈안이 돼 있다.
결정적인 단서라고 생각했던 샬롯이라는 이름의 배를 극적으로 찾았지만 거기서부터 모험은 다시 시작된다.
추적 끝에 미 독립선언문과 1달러 짜리 지폐에서 또다시 단서를 발견한다. 하지만 샬롯에서 의견 충돌을 빚은 후 적으로 돌아선 옛동지 이안(숀빈 분)과 독립선언문을 훔치면서 따라붙은 FBI의 추격이 숨쉴 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는 많은 부분 최근 서점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다빈치 코드’를 생각나게 한다. 프리 메이슨이나 템플 기사단 등 ‘다빈치 코드’로 인해 익숙해진 기독교적 단어들이 등장하고, 수수께끼가 곳곳에 놓여 있는 모양새가 그러하다.
물론 ‘다빈치 코드’에 비해서는 해석이나 추리를 요하는 깊이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얇다.
하지만 12세 관람가답게 이 정도 선에서의 타협이 가장 무난했던 선택이었으리라. 그러다보니 영화는 마치 1985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구니스’의 2004년판 같다.지극히 미국적인 장소를 무대로 감칠맛 나는 부비트랩과 수수께끼를 늘어놓고 속도감 있게 관객을 몰아붙인다. 그러나 그 수준은 ‘구니스’가 그러했듯 아이들이 넋을 쏙 빼놓고 즐길 수 있을만한 정도다. 해답은 너무 쉽고, 주인공의 다음 행보는 만천하에 공개된 듯 예상가능하다.영화의 설정은 흥미롭지만 뛰어나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을 풀어가는 방식에서는 할리우드의 거대한 자본력이 선명하게 아우라를 발휘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존재방식이려니 생각하면 위안이 될까. ‘트로이’에서 빼어난 독일 미인의 고전적인 자태를 뽐냈던 다이앤 크루거가 문화재 박사로 출연, 타이트한 청바지 패션을 선보인다. 31일 개봉.
■룩앳미 … LOOK AT ME
참보잘것 없다. 스무살 아가씨 롤리타(마릴루베리). 오늘도 체중 조절에는 실패했고 불만 투성이인 얼굴에는 ‘엿먹어라’는 식의 표정만이 가득하다.
주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명한 작가인 아버지 에티엔(장 피에르 바크리)의 덕을 보고자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 뿐이고 이 아버지도 심술과 오만이 가득한 자기 중심적인 인간이다.
그런 그녀에게 즐거움이 있다면 바로 성악 연습을 하는 것. 나름대로 공연 준비에 열심이던 롤리타에게 어느날 관심을 주는 남자가 나타난다.
24일 개봉한 ‘룩앳미’(원제 Comme Une Image)는 한국 팬들에게는 ‘타인의 취향’으로 알려진 프랑스 감독 아네스 자우이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고른 호평을 받은 끝에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프랑스 개봉시에는 200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타인의 취향’에 함께 출연했던 감독과 남자배우 장 피에르 바크리가 다시 호흡을 맞췄으며 두 사람은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집필하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도 있고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도 생긴 롤리타. 성악 선생님인 실비아(아네스 자우이)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니 이젠 호감을 느낄만한 사람도 생긴 처지다.
이젠 그녀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지만 현실이란게 그렇듯, 상황이 썩 잘 풀리지만은 않는다.
전 남자친구에게는 ‘못된 꼴’을 당하고 실비아 선생님도 알고보니 에티엔의 도움으로 남편 피에르(로랑 그레빌)가 성공을 거두기를 은근히 바라는 처지. 새로운 남자 친구 세바스티앙(케인 부이자)도 롤리타에게는 썩 매력적이지 못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감독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있다.
영화 속 관계는 권력을 가진 남자인 롤리타의 아버지 에티엔을 중심으로 얽혀있다. 에티엔의 젊은 부인 카린(비르지니 드사르노)은 남편에게 무시를 당하며 살고있고 롤리타의 성악 선생님인 실비아와 그녀의 남편이며 젊은 소설가 피에르는 에티엔을 통해 주류 문단에서 성공을 꿈꾸고 있다.
새 남자친구 세바스티앙도 에티엔의덕에 막 일자리를 얻은 처지. 이들은 한결같이 에티엔에게 조롱을 받으면서도 이를 잘 참아내는 입장이다. 권력가인 그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이들 중 일부는 후반부에 ‘싫다’며 인상을 쓰게 된다.
감독과 영화의 장점은 관객들이 자신을 대입시켜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캐릭터들이 섬세하고 정교하다는 것.
인물들 사이의 관계는 현실에서 뽑힌 듯 날카롭게 옮겨졌지만 인물 자체가 스스로에 대한 변명과 그럴듯한 이유를 담고 있는 까닭에 냉소적이라기 보다는 따뜻하게 느껴진다. 상영시간 110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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