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크리스 교수와의 만남(上)

지금은 세상을 떴지만 내가 크리스토퍼 프리맨 교수를 처음 만난 곳은 1993년 여름 영국남단의 도시 Brighton에 소재한 Sussex 대학 내에 있는 SPRU(Science & Technology Policy Research)의 그의 연구실에서였다.

SPRU란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과학기술력에 좌우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가 설립한 과학기술정책 전문의 단과대학인데도 설립자인 그의 연구실은 그의 명성과는 달리 너무나 초라했다.

영국은 더운 날이 며칠 안 되어서 에어컨을 별로 사용하질 않는다고는 듣고 있었지만 그의 방엔 무척 후텁 지근한 날씨였는데도 다 낡아빠진 선풍기 한 대만이 돌아가고 있었고, 방의 넓이는 한사람의 방문객을 맞을 정도의 비좁은 공간뿐이었다. 그곳 사람들의 얘기로는 크리스교수를 만나려면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한다며 어떻게 그를 쉽게 만날 수 있었느냐고 의아해 했다.

그러나 처음 만난 나를 대해주는 크리스교수는 대단히 소탈했고 언젠가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분위기였다.

차(茶)를 부탁한다고 비서에게 전화를 한 지가 한참이 되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또 비좁은 자기 방을 의식했음인지 휴게실로 옮겨서 얘길 하자며 날 데리고 간 곳은 복도와 복도가 연결되는 곳에 소파 한세트와 의자와 탁자 몇 개가 초라하게 놓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한쪽 모서리에는 한 젊은 할머니가 커피 등의 음료수와 초콜릿 등 몇 가지의 과자종류를 파는 조그만 매점(엄밀히 매점 수준이라 볼수 없는)이 하나 있었다. 소파를 차지하고 차를 마시는데 마침 그곳에 헝가리의 국책연구소 소장이라는 여자 한분이 내가 KIST에 있었다니까 KIST에 대해서 잘 안다며 얘길 같이 나누었으면 해서 동석하게 되었다.

크리스교수의 전문분야는 경제학이었지만 기술을 외생변수(exogenous variable)로 보는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경제학이 아니고 기술변화를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중시하는 비주류의 경제학자였다.

당시 그는 국가간 또는 경제 블록간의 경제수준의 차이와 격차를 기술변화와 경제성장과의 관계로 설명하는 자기의 독자적인 ‘기술변화 이론(The theory of technological change)’을 정립해 놓고 있는 학자였다. 그는 경제학자였기에 거시적(macro)관점에서 기술과 경제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본 저자는 미시적(micro)관점에서 기술과 기업성과와 관계에서 기업간의 우열과 그로 인한 산업의 주도권 이동에 대하여 그 원리를 구명해보려는 도전을 감히 시도하고 있었다.

학기가 끝나고 방학기간에 그를 만나려한 나의 방문목적과 이유를 확인한 뒤 런던에서 거기까지 어떻게 왔느냐고 내게 물었다. 사실 영국에서는 대중교통편이 한국에 비해 대단히 불편한 편이었기에 오기 전에 삼성런던사무소에서 교통편을 마련해 주었노라 답했더니 그의 태도가 갑자기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이었다.

삼성(SAMSUNG)이라는 말을 듣자 삼성과 어떤 관계냐고 물으며 갑자기 변하는 나에 대한 그의 정중한 태도에서 삼성의 이미지와 위상이 영국에서 세계 톱 레벨로 각인돼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1월6일 下편 계속>

/ 김인호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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