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 기차 다 모였네~
‘기차’는 누구나 한 가지 추억을 떠올릴 만큼 친근한 교통수단이며, 기차와 함께 떠난 낯선 여행지는 설레임과 호기심이 교차한다.
이젠 검은 연기를 토해내며 팔도강산을 지나 중국 베이징까지 달렸던 증기기관차는 역사 다큐멘터리에서나 만날 수 있다. 지난해 4월 개통한 고속철도(KTX)는 최근 시험에서 시속 352.4킬로미터를 주파했으며, 서울과 부산 구간을 2시간 이내 다다를 만큼 교통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과학의 발전은 시대에 따라 ‘철도혁명’이라 부를 만큼 변화의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끝없이 이어진 철도를 따라 삶의 문화 또한 변화시킨 기차의 모든 것을 담은 의왕시 월암동 소재 철도박물관(관장 손길신).
전철 1호선 의왕역에서 내려 도보로 10분 정도 철길을 따라 걸으면 햇빛에 반짝이는 왕송저수지를 마주한 철도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8천500여평 부지에는 2층 전시장과 야외 전시장에 총 5천여점의 철도관련 자료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먼저 중앙홀에 들어서면 1930년 제작된 파시형 증기기관차 1/10 축소모형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 운행이 가능한 이 기관차 뒷면에는 1897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기공식 장면의 대형사진이 걸려 있는데 흰 한복을 입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통해 당시 명성황후 국상임을 알 수 있다.
‘모형철도 파노라마실’은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코너다. 예전에 운행하던 비둘기호 열차를 비롯 통일호, 무궁화호, 새마을호 열차, 전철 및 KTX가 서울역을 출발점으로 질주하는 장면을 관람할 수 있다.
또 ‘열차운전 체험실’은 기관차 운전석을 꾸며 직접 기관차를 운전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으며, ‘역사실’은 세계 최초의 기관차 패니다랜호와 죠지 스티븐슨이 만든 증기기관차 로코모션호의 모형 그리고 가마와 우마차 등 철도 이전의 교통수단과 구한말 철도 관련 유물을 전시했다.
역사실 전면을 차지한 미카3-129 증기기관차 모형은 한국전쟁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미 24단장 딘 소장이 북한군에 의해 포위됐을 때 그를 구출하기 위해 미군 특공대 33명과 김재현 기관사 전원이 전사했으며, 김 기관사의 유품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2층에는 철도관련 시설물과 각종 열차표 등이 차곡차곡 진열돼 있다. 원활한 교통을 위한 철도신호설비 등과 선로 보수를 위한 장비 및 침목 등을 선보인다. 특히 건널목 경보장치의 버튼을 누르면 직접 신호조작도 할 수 있다.
‘미래철도실’에서는 세계 각국의 최첨단 고속철도 모형과 사진, 철도역사 홍보자료를 선보이고, 고속철도 개통식때 선보였던 KTX 모형과 도라산역 개통 당시 전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담긴 침목도 볼 수 있다.
여기다 1943년 서울과 중국 단둥 간을 운행했던 당시 열차운행표, 1909년 순종 황제가 이용한 궁정열차 승차권과 각종 승차권, 연대별 철도직원 제복과 완장도 만날 수 있다.
또 1925년 국내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인 서울역 ‘그릴’에서 사용했던 탁자와 순은제 식기류 등 실물을 고스란히 전시하고 있다.
야외전시장은 말로만 듣던 증기기관차와 지금은 사라진 협궤열차 등 다양한 열차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영화를 누리며 철길을 다렸을 기차들을 마주한다는 자체만도 흥분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이 이용했던 귀빈객차. 1927년 경성공장(지금의 서울철도차량정비창)에서 조립·제작했으며, 1955년 침실과 회의실, 화장실로 개조한 대통령 전용차량이다. 관리상 주말만 개방한다.
박물관 주변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1960년대 운행했던 디젤기관차를 직접 승차해 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
한편 이곳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TV드라마 ‘영웅시대’ 등 시대극의 주요 세트장으로 인기가 높다.
박물관의 전시작품은 두달 간격으로 교체되며,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날은 휴무다. www.korail.go.kr.
문의 460-4386/이형복기자 bok@kgib.co.kr
/사진=원지영기자 jywon@kgib.co.kr
■인터뷰/손길신 철도박물관 관장
“관람객 위한…체험공간 확충”
“박물관이 단순히 옛 물건들을 보여주는 시대는 지났죠. 새로운 문화교육의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1년전 관장으로 부임한 손길신 철도박물관 관장(64)은 박물관 엄숙주의를 깨고 관람객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중앙홀에 모형 증기기관차가 있어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싶어했지만 철제 구조물 때문에 모양새가 좋지않아 철거했고, 곳곳에 붙어 있는 사진촬영 금지 푯말을 모두 떼냈죠.”
손 관장은 ‘철도이야기’란 자료집을 만들고, 손수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다양한 정보도 올렸다.
또 지난해 9월 ‘개인소장 철도유물 특별전’을 열어 진귀한 철도 관련 유물들을 한 자리에 모으기도 했다. 이어 철도 그림그리기 대회와 철도청 직원 서예·서각전을 개최해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계간지 ‘화륜거(火輪車)’ 창간호를 발간하는 열정을 발휘했다.
“유물 전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철도유물 특별전’은 꽤 반응이 좋았습니다. 올해는 규모를 늘려 개최할 예정이죠”
손 관장은 철도청 여객과장과 전철운영단장, 한국철도대학 초빙교수 등 39년간 철도에 몸담은 철도인이다.
그 동안 한국철도학회 활동을 통해 새로운 지식 습득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일본 등 교통 선진국 박물관을 답사한 경험을 살려 철도박물관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일본 교토에 있는 증기기관차박물관 야외에는 미끄럼틀 등 갖가지 어린이 놀이터가 마련돼 있는 등 관람객들의 쉼터이자 놀이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여건이 되면 놀이시설과 야외에서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휴식공간을 마련할 것입니다”
철도박물관은 연간 24만명이 관람할 만큼 발길이 잦은 곳이지만 2001년 경영합리화 차원에서 아웃소싱한 이후 예산이 대폭 줄어 현상 유지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KTX 등 현대적 흐름과 미래를 조명할 수 있는 전시물 설치가 시급한 실정이다.
“박물관은 구조조정 대상이 아닌 투자의 대상입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공간과 전시공간 확충을 위해 철도를 사랑하는 후원자들이 많이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
■철도이야기
‘철도이야기’는 철도박물관이 소장한 유물과 철도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기 쉽게 집약한 가이드북.
손길신 철도박물관장이 직접 제작한 이 책은 일반인과 어린이들에게 철도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었다.
책은 작지만 철도의 역사와 각종 기관차, 철도신호, 기차표, 철도직원 소품 등을 해설과 컬러 사진을 곁들였다.
특히 ‘호기심 마당’에서는 기찻길에 자갈을 깐 이유를 비롯 가장 높은 역사와 긴 터널, 높은 철교 등 철도 관련 궁금증을 담아 흥미를 끈다.
이밖에 1899년 경인철도합자회사부터 최근 휘호까지 15개의 철도 휘장을 담았고, 열차이름과 속도의 변천사, 국내외 철도 소사를 도표로 정리했다.
손 관장은 “초등학생들이 열심히 수첩에 메모하는 모습이 여간 대견하지 않다”며 “이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주기 위해 소책자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값 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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