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어느 농협인의 아름다운 퇴임식

“강산이 세번 바뀐다는 30년 세월을 농협과 농촌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제 홀연히 떠나가고자 합니다”

지난 28일 농협중앙회 오산·화성시지부 오산시청 출장소장을 끝으로 31년동안의 직장생활을 마감한 박동환 소장(51)이 복받치는 아쉬움에 눈시울을 적시며 떨리는 음성으로 조촐한 명예퇴임식 인사를 가름했다.

빈농의 9남매중 장남이었던 그는 고교시절 내내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던 우등생이었지만 선택의 여지 없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밖에 없어 진학을 포기하고 지난 73년 연천군농협에 입사, 농협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런 가운데 박 소장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부모와 몇몇 동생을 잃는 통한의 아픔을 감수해야 했지만 시련을 딛고 형제들을 출가시키는 등 가장으로서의 본분을 묵묵히 지키며 농협인의 꿈을 키웠다.

지난 90년 농협중앙회 화성군지부 과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퇴임하는 날까지 15년동안을 농협중앙회 오산·화성시지부에 몸 담으면서 독특한 아이디어를 선보여 농협중앙회장 표창을 수상하는 등 농협과 농촌 발전에 열정을 쏟았다. 온화한 성격인 그는 동료들과 고객들을 늘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하는 등 직장 안팎에서 인간미 넘치는 진정한 농협인으로 통했다.

“농산물 수입 개방과 금융시장 개방 등으로 농협과 농촌 현실이 더욱 어려워진 때 무거운 짐을 동료들에게 맡긴 것 같아 미안하다”고 울먹이면서도 그는 애써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보장된 임기에 연연해 하지 않고 후배들을 위해 명예퇴임을 자처하기까지 그는 많은 시간을 자신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영예로운 퇴임을 새로운 시작으로 맞으며 초연하게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조금은 쓸쓸해 보였지만 아름답게 비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 윤 장 기자 j60@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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