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영원한 그 이름, 아내여!

입원할 땐 부축하며 나란히 손잡고 들어섰던 병원을 주검으로 퇴원했구려. 그게 불과 일주일만이오. 설 연휴엔 밤낮으로 당신과 함께 있을 거라고 했잖소. 그 새를 못견디고 가버렸구려.

당신의 고통을 짐작은 했지만 미처 더 헤아리지 못한 못난 남편의 허물이 크오. 평생동안 내 뒷바라지를 해온 손을 매만지며 나눈 몇마디가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소.

병환 중 보낸 지난해 추석을 얘기하며 올 설은 웃음으로 보내자고 했잖소. 수술을 잘 마치고 나온 서너달은 지금 생각하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참으로 소중한 나날이었소. 그 어려운 항암치료를 오직 살고자하는 의지 하나로 여섯차례나 견디고 나선 졸업한 것으로 알고 우린 좋아했지요. 다시 도져 허리로 옮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날벼락이었소. 수술이 너무 늦도록 당신의 건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다 나의 잘못이오.

배필잃은 사생활을 무슨 염치로 여기에 얘기하느냐고 너무 탓하지 마오. 못난 경험으로 미루어 나같은 세상 남편들이 또 있을까봐 그래서 이러오. 많은 주부들이 그런 것처럼 당신은 아파도 내색조차 하지 않았소. 바깥 일하는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지요.

어쩌다가 낌새를 채고 병원에 가보라 해도 “이러다 괜찮을 거”라며 버티곤 하는 것을 그냥 넘긴 나야말로 정말 미련스런 남편이었소. 당신의 손목을 억지로 끌고서라도 진즉 초기에 큰 병원을 찾지 않았던 회한이 이토록 가슴을 저미는구려.

어느덧 4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이오. 당신과 함께한 세월을 전엔 어리석게도 잘 몰랐소. 가고나서야 비로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던 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소. 집안 구석구석 밴 당신의 흔적속에 주인없는 빈 자리가 너무도 크오. 나야 가전품 돌리는 건 고사하고 심지어 면도날 하나 가는 것조차 당신이 다 해줬잖소.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을 적마다 갑자기 이게 뭔가 싶고, 입원하러 가면서 썰어놓은 김치로 밥을 먹을 때면 덩그러니 임자잃은 당신의 식탁 의자가 목 메이게 하는구려. 벌써부터 나오는 빨래감에 세탁기를 다룰줄 몰라 일일이 손빨래를 하면서도 당신의 손길에 닳은 빨래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떨구는구려. 두 아들 며느리와 손주들, 세 시동생과 동서들, 그리고 조카들을 이리저리 다독거리며 집안을 무던히도 잘 챙겨온 당신이었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밀물처럼 엄습하는 고독이오. 큰아이 내외가 함께 있자는 것도 싫고 우리 집에 와서 밥 해주겠다는 것도 귀찮기만 하오. 밤늦도록 술에 찌든 것만은 유난히 잔소리하던 당신의 목소리를 이제 영 들을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숨이 막힐듯이 답답하기만 하오.

아버지 어머니 상을 당신과 함께 치렀잖소. 불효스런 말이지만 배필을 잃은 슬픔은 어버이를 잃은 슬픔과 또 다른 것을 가슴이 미어지도록 실감하오. 당신의 속을 적잖게 썩였소. 믿었기 때문이오. 내가 어떻게 하든 다 이해하고 용서해줄 것으로 알았고 또 당신은 그래왔소. 카드빚도 여러차례나 갚게해 당신의 계획을 망치게 하곤 했잖소. 입원하기 바로 전엔 누웠다가 일어서기가 거북하여 퇴근하는 나를 보고 장롱에 기댄 채 이부자리에서 미소 지어 손을 흔들곤 했지요. 지금도 당신의 손때 묻은 방안의 모든 것은 그대로 있는데, 이 세상 어디에서도 영 당신을 찾아볼 수 없게 됐구려.

하긴, 부부의 사별이 어찌 나만이 당하는 아픔이겠소.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섭리는 피할 수 없는 인간사의 숙명인 것을 혼자만의 아픔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외람된 생각이지요.

하지만 생전에 고생시키고 또 허망하게 떠나보낸 자책감이 너무 커 더욱 그립구려. 이 칼럼란은 당신이 칭찬보다는 지적을 많이 하면서도 빼놓지 않고 늘 읽어 주었소. 겉멋은 부리지 말고 알기쉽게 쓰라고도 했지요. 당신 얘기를 이렇게 쓰게될 줄은 차마 몰랐소. 주책없다거나 뭐라고 또 나무라겠지요.

그리고 사별의 상심에만 사로 잡히는 게 당신의 뜻이 아닐거란 것을 생전의 성품에 비추어 왜 모르겠소. 열심히 살다가 당신이 간대로 우리가 약속한 카톨릭의대를 통해 뒤따라 갈 것이오. ‘안소자’란 이름, 당신은 영원한 그 이름 그대로 아내요.

삼가 명복을 비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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