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행정도시病 ‘증후군’

살다보면 남을 탓할 일이 있긴 있다. 남을 탓할 때 탓해도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하는 것이 세상사 이치다. 세상사는 자신에 의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를 애써 외면하는 이들이 있다. 정치인들이다. 심대평 충남지사가 3선의 디딤돌이던 자민련을 탈당했다. 충청권, 즉 중부권을 발판으로 하는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시효가 소멸된 자민련 대신 제2자민련을 만든다는 소리다.

염홍철 대전 시장은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다만 신당참여를 말하지 않은 것은 형세를 관망하고자 할 생각일 것이다. 김종필(JP)같은 ‘충청당’의 새 맹주를 꿈꾸며 기선을 제압하고 나서는 심 아무개에게 당장은 이용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 또한 없지 않을 수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 여야의 백중지세를 틈타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해가며 재미를 본 것이 자민련을 무기삼은 JP의 정치곡예다. 노무현 정권 역시 여야가 난형난제다. 이 틈을 타 심대평이 JP의 후계 구도를 꿈꾸는 야심은 그 말로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의 임의다.

문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있다. 그같은 지역당 재출현의 빌미를 만들어준 것이 바로 여야 양대 정당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충청당’ 창당선언에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은 떨떠름하고 있지만 그게 다 남을 탓할 일만이 아닌 자업자득이고 자승자박이다. 열린우리당은 무산된 행정수도 대신 행정도시를 만들어 주면 충청권은 절로 텃밭이 될 것으로 여겨 안간힘을 다 썼지만 죽 쑤어서 무엇 좋은 일 시킨 꼴이 됐다.

사정은 한나라당 역시 다르지 않다. 충청권의 기존 세력을 다독거린답시고 행정수도도 찬성하고 행정도시도 손들어 주었지만 닭 쫓던 뭐가 지붕쳐다 보는 꼴이 돼 간다.

정치는 신념이고 원칙이다. 신념과 원칙에 의해 형성되는 표가 진짜 표다. 이러지 않고 상황논리에 의한 요령과 변칙으로 노리는 표는 언제 꺼질 지 모르는 거품과 같다. 열린우리당은 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났을 때 그만 두는게 대선공약의 사슬에서 자연스럽게 풀리는 좋은 기회였다. 한나라당도 행정도시라는 이름의 수도 분할을 수도 이전의 위헌 결정을 방패삼아 반대하는 것이 더 할 수 없는 좋은 명분이 될 수 있었다. 이런데도 두 당은 표에 눈이 멀어 코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 볼장 다 본 아무개가 신당 창당을 선언하고 나서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 건 남을 탓하기 앞서 여야가 자신을 탓해야 한다. 목전의 불이익이 결코 불이익이 아니고, 이익이 결코 이익이 아님을 가릴 줄 아는 형안은 이러므로 요령과 변칙이 아니고 신념과 원칙이다.

열린우리당이 수도권의 행정도시 반발 무마책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내놓는 갖가지 장밋빛 선심 변칙을 경멸하는 이유도 이에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국익을 위해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 행정도시를 반대하면 규제를 풀지않고, 찬성하면 규제를 풀 수 있을 것으로 보는 흥정거리 대상이 아니다. 나라 운영의 정책을 마치 장돌뱅이 행상의 에누리처럼 이렇게 저렇게 흥정해서는 그러한 정책 자체가 신뢰를 얻지 못하는 건 원칙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행정도시 반대와 수도권 규제 완화 및 철폐는 별개의 사실이란 점이다. 수도권 규제완화가 아니라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없앤다 하여도 행정도시 건설은 동의할 수 없다. 당장 국익을 해칠 뿐만이 아니라 장차 통일 한반도의 미래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가소로운 건 열린우리당의 선심 남발이 예컨대 해당 부처에선 절대적으로 부인하는 국방시설까지 옮기는 것으로 흘리는 무책임이다. 수도권 민심 수준을 그토록 만만하게 보는 오만함에 오히려 분노를 갖는다. 지금이라도 아주 늦지 않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새치기 할 생각보단 제 줄로 갈 생각을 해야 한다. 잘못을 시인할 줄 아는 용기가 참다운 용기다. 남을 탓하기 앞서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오기로 더 가다가는 제2 충청 지역당의 신당만이 아니라 군웅이 할거하는 난세를 당하기 십상이다. 나라가 혼란에 빠져 민생이 어려워진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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