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북송

수풍발전소는 평북 삭주군 청수읍 수풍리 압록강 하류에 있는 발전소다. 신의주와 가까워 통상 신의주 수풍발전소 라고도 했다. 1937년에서 1944년 사이에 세운 이 발전소는 최대 발전량이 70만㎾에 이르러 당시엔 동양 최대 규모로 꼽혔다. 만주와 공동 출자로 건설되어 전기를 절반씩 나눠 공급했다.

이렇게 수풍발전소 발전량의 절반만 가지고도 한반도 전력 수요를 감당했다. 1948년 5월 북측은 38선이 생기고도 3년 동안 남쪽에 공급해 온 전기를 갑자기 일방적으로 끊었다. 당시 남쪽엔 ㈜조선전기가 발전을 했으나 지극히 미미해 95.6%의 전력을 수풍발전소 송전에 의지했었다. ㈜남선전기가 있었으나 발전이 아닌 배전업무만 하였고 ㈜경성전기는 서울시내 전차운행이 주된 사업이었다. (이 전기 3사가 1980년 통합되어 국책회사로 만든 것이 한국전력주식회사다)

북측 단전은 남쪽의 산업전력은 물론이고 가정 수요까지 치명적 타격을 안겨주어 일반 가정은 낮에는 아예 전기공급이 안 되고 밤에도 초저녁만 잠깐 송전해주곤 했다. (기관장 등 고위 관료 집만 ‘특선’이라고 하여 24시간 배전됐다)

남쪽 전기가 이번 주에 개성공단으로 보내진다. 남북간 단전 57년만에 1만5천㎾를 예전과는 반대로 북녘에 송전되어 개성공단 국내업체에 공급된다. 비록 북녘 가정과 산업체엔 보내지는 게 아니지만 전기의 역류는 금석지감을 실감케 한다.

광복 당시엔 북쪽 중화학공업과 사회간접자본 분야가 남쪽을 훨씬 능가했다. 남쪽이 북녘을 추월한 것은 제3공화국 들어 시작된 산업화로 고도성장을 이룩하면서 부터였다. 지금의 북쪽 발전량은 196억㎾h로 남쪽 발전량 3천224억㎾h의 6%에 지나지 않는다. 57년 전 수풍발전소 전력을 단전하던 그 무렵과 정반대의 상황이 됐다.

압록강 수풍발전소 또한 온전하지 못했다. 북쪽이 전력난을 겪는 이유는 낙후된 시설에도 원인이 있지만 수풍발전소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데 기인한다. 1948년 10월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수풍발전소 시설을 몽땅 뜯어갔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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