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윔블던.잠복근무.호스티지.‘아이엔지 영화제’

■윔블던

‘사랑의 힘’ 기적을 만들다

‘윔블던’은 영국 중산층의 사랑에 대한 팬터지를 참으로 적절하게 그리는 워킹타이틀의 향기를 그대로 뿜어내고 있다.

이보다 더 영국적일 수 없는 윔블던 테니스 경기를 소재로 남녀 테니스 스타의 사랑과 승부를 상큼하게 그린 것.

젊은 후배들한테는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32세의 노장 테니스 선수 피터(폴베타니 분)는 현재 세계랭킹 119위다. 최선을 다해도 이제는 실력이 더 이상 늘지않으니 은퇴나 해야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지나온 세월이 서글프다. 운동한답시고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해봤고 그렇다고 우승 트로피 한번 안아본 적 없다. 그런 그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사실은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또다시 윔블던대회에 출전한다.

그런데 이게 왠일. 세계 1위를 다투는 여자 테니스 스타 리지(커스틴 던스트)가 쿨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그것도 “시합 전 섹스가 경기에 어떤 결과를 미칠 지 아니? 가볍게 즐기자”면서. ‘와이 낫(Why Not?)’ 영화는 워킹 타이틀이 지금껏 주장해왔듯 사랑의 힘을 설파한다. 어디서나 실력차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때때로 사랑은 기적을 발휘하는 법. 물론 진짜 사랑일때 말이다. 카메라는 단정하고 우아한 윔블던 코트를 매력적으로 잡는 한편 소박한 영국의 전원 생활과 어촌에도 사랑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와 여물어 가는 핑크빛 사랑을 교차하며 관객을 너그럽게 만들고, 동시에 혹독하게 딸을 조련하는 리지의 아빠와 낱알처럼 흩어졌던 피터 가족의 변화도 밉지 않게 담아냈다.

‘윔블던’의 이야기는 2001년 10월 맺어진 앤드리 애거시와 슈테피 그라프 커플덕에 아주 허무맹랑하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애거시는 결혼으로 세계 랭킹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부진의 늪에서 탈출, 주요 대회 우승을 휩쓸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너무 자신만만했던 것일까. 감탄고토하는 얄미운 에이전트를 통해 특유의 위트를 과시하고, TV를 통해 사랑을 고백하는 등의 ‘전기감전요법’으로 관객의 입맛을 돋우긴 하지만 영화는 왠지 모르게 정형화된 느낌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너무 쉽게 답습한 듯한 인상. 알싸한 봄바람처럼 영화는 보는 이의 기분을 업 시킨다. 살갗이 찌릿찌릿 흥분되기도 하고, 주책맞게 코 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워킹 타이틀만의 톡 쏘는 맛이 부족하다. 그 때문에 요소요소 작위적인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래도 두손 들어주고 싶은 부분은 할리우드 스타 커스틴 던스트를 캐스팅했음에도 그녀에게 기대지 않았다는 것. ‘기사 윌리엄’의 주정뱅이 폴 베타니의 스타 탄생이다.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잠복근무

웃음·액션·감동 3박자 골고루 부담없이 즐기기에 ‘안성맞춤’

6:3:1쯤 될까? 17일 개봉한 ‘잠복근무’는 코미디와 액션, 로맨스가 6:3:1 정도로 적절하게 섞여있는 영화다.

적어도 팝콘이나 오징어를 사다 들고 객석에 등을 파묻은 채 부담없이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가장 ‘믿음’이 가는 여배우인 김선아가 등장하는데다, 코믹과 액션이 적절히 뒤섞여 있고, 풍부하고 알찬 에피소드들에, 제 몫을 충분히 해내는 조연들의 연기까지, 상차림이 풍성하니 7천원의 관람료가 아깝다는 식의 실망감이 관객의 입에서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학창시절 문제아였고 경찰이 되서도 사고뭉치이며 결국은 학교로 다시 돌아가 그 문제아적 ‘성깔’로 학교를 평정하는 여형사 캐릭터는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설정.

여기에 실은 경찰이 꿈이었던 담임 선생님을 연기하는 박상면과 조카가 항상 불안하기만 한 삼촌 천반장역의 노주현, 매력적인 악역을 만들어 낸 오광록 등 조연들의 매력도 풍성하다.

다혈질이지만 사고뭉치인 ‘문제적’ 여형사 천재인(김선아)은 자신의 직속상관이자 삼촌인 천반장(노주현)으로부터 여자 고등학교에 학생으로 잠입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임무는 이 학교의 우등생 차승희(남상미)와 친해져 그녀 아버지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 아버지 차영재(김갑수)는 폭력조직의 소탕을 위해 법원에 증언을 할 중요참고인이다.

‘지옥 같았던’ 고등학교 생활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 데, 한 술 더 떠 재인은 잘못된 설정으로 이제 우등생 행세까지 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이 학교에 있던 ‘기존의’ 문제아들은 재인의 학교 생활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담임선생님의 배려도 일을 더 꼬이게 만든다. 친구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승희와 친해지는 것도 불가능해 보일 정도다.

이렇게 ‘뻑뻑한’ 학교 생활을 하던 중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청량음료 같은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몸짱에 매너도 좋고 싸움까지 잘하는 강노영(공유)이다. 승희와 재인의 주위를 맴도는 노영. 하지만 그 역시 학생 같지 않은 수상함을 지니고 있다.

뻔한 재료에 흔한 공식의 상업영화이지만 영화는 상당량의 웃음과 어느 정도의 액션, 그리고 약간의 감동이라는 의도를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만한 매끄러움을 갖췄다.

곳곳에 억지스럽게 짜 맞춰진 설정과 인물, 과장된 에피소드들이 숨어있지만 재미를 반감시킬 정도까지는 아니다. ‘퇴마록’을 만들었던 박광춘 감독이 2002년 ‘마들렌’ 이후 3년만에 내 놓은 신작이다. 111분. 15세 관람가.

■호스티지

‘휴먼영웅’ 10년만에 컴백

브루스 윌리스가 ‘다이하드’ 시리즈를 끝낸지도 어언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부지런히 액션 블록버스터에 출연해왔지만 진정한 영웅이 되지는 못했다. 영웅에 대한 갈증. 윌리스는 ‘호스티지’를 통해 그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

‘호스티지’는 제목이 노출하듯 인질과 그 인질을 구출하는 경찰의 이야기다. 액션 블록버스터로서의 최상의 조건. 윌리스가 동명의 소설을 보자마자 영화화 욕심을 낸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따지자면 이 영화는 스케일과 스릴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제프 탤리(브루스 윌리스 분)는 LA 경찰국 소속 최고의 인질범 협상가. 그러나 지독한 자만감에 인질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건 이후 그는 시골마을 경찰서장이 돼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이 조용한 마을에 생각지도 않은 인질 사건이 발생한다. 대저택에 갇힌 세명의 인질과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세명의 범인. 이제는 더 이상 네고시에이터가 아닌 탤리는 연방경찰이 맡은 사건을 측면에서 지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그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괴한들이 돌연 탤리의 아내와 딸을 납치해간다. 괴한들의 요구사항은 인질범들이 장악한 대저택에 침투, 자신들이 찾는 물건을 빼내오라는 것. 탤리는 인질범은 물론 동료 수사관들마저 따돌려야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진다.

윌리스는 ‘다이하드’의 영광에 ‘식스 센스’의 울림을 양손에 쥐고 싶어했다. 곳곳에서 돈 냄새가 묻어나는 난공불락 요새 같은 호화로운 대저택을 통해 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네고시에이터와 가장으로서의 인간적인 고뇌를 진하게 표현하려 했다.

영화 속 인질 사건의 이중구조는 그런 점에서 대단히 효과적인 장치. 실제로 치밀하게 설계된 부잣집은 인질 중 한명인 8살 꼬마가 악당을 상대로 펼치는 컴퓨터 게임 같은 무대가 되준다.

또 인질범과 심리전을 펼쳐야하는 와중에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되면서 극도의 혼란을 경험하는 탤리의 모습은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배수의 진을 친 상태에서 범인과 협상을 하고 물건을 빼내와야 하는 탤리의 상황이 국가와 세계를 구해야하는 여타 할리우드 영웅들보다 인간적인 것은 사실. 여기에 원없이 터져주고 쏴주는 액션 장면이 기본으로 깔려있으니 영화는 모든 조건을 고루 갖춘 셈이다.

그러나 이제 50대에 접어든 윌리스는 말이(혹은 생각이) 많아졌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과잉’의 혐의가 짙다.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느낌이다. 18일 개봉, 15세 관람가.

■오늘 ‘아이엔지 영화제’

일상속 진한 감동…‘단편영화의 즐거움’

독립 영화, 혹은 단편 영화의 즐거움은 그 메시지에 있다. 깨끗한 영상이나 화려한 움직임, 섬세한 감정 표현 등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렇기 때문에, 투박한 일상과 우리가 흔히 지나쳐 버릴 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한 번 푹 빠지면 더욱 진한 감동을 얻는다.

대학교 영상 관련 단체들이 만든 작품을 상영하는 ‘아이엔지 영화제’가 19일 오후 2시 안성에 위치한 한경대학교 공동실험실습관에서 마련된다.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동국대학교 영화학과 대학원, 상명대학교 영화학과 인디스토리 등이 참여한 이번 영화제에는 총 15여 개의 작품이 선보여진다.

제3회 서울 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 경쟁부문 우수상을 차지했던 ‘사이코 드라마’부터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단편 경쟁부분 초청작 ‘으랏차차 라스트 매직’, 제56회 칸느 국제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올랐던 ‘원더풀 데이’ 등 수준 높은 단편영화 들이 참여할 예정.

각기 다른 소재로 삶의 다양한 의미를 짚어내는 이들 작품은 영화의 또 다른 참맛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의 670-5114

/박노훈기자 nhpark@kgib.co.kr

■연극배우 출신으로 ‘학생부군 신위’, ‘301·302’ 등의 영화에 출연했던 방은진 <사진> 감독의 데뷔작 ‘오로라공주’가 지난 14일 촬영을 시작했다. ‘오로라공주’(제작 이스트필름)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스릴러물. 잇딴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현장에는 ‘오로라공주’ 스티커가 유일한 단서로 발견된다. 이를 발견한 오형사(문성근)은 1년 전의 악몽 같은 사건을 떠올리고, 범인이 정순정(엄정화)임을 직감하게 된다. 이 영화는 6월말까지 촬영된 뒤 10월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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