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 직후의 일이다. 만주에서 귀국한 사람들 중 무명의 독립운동가가 사태났다. 아편장사 했던 사람도, 심지어는 일본 헌병밑에서 밀정노릇을 했던 사람도 독립운동가를 자칭했다. 이국의 황야에서 일제와 싸우다가 고혼이 된 진짜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저승에서 치를 떨 일이었다.
우리의 언론사엔 ‘해직기자’란 특유의 기록이 있다. 1973년 유신정권, 1980년 신군부가 언론 탄압으로 양산하였다. 언론계의 숙정작업을 명분 삼았다. 겉으로는 언론사 자율을 내걸었으나 당시 문화공보부와 중앙정보부가 배후에서 조종했다. 이런 배후 권력에 의해 언론계에서 쫓겨난 게 ‘해직기자’들이다. 수많은 이들 중엔 정권에 항거한 보복으로 억울하게 해직된 언론인들이 상당하다. 그러나 ‘해직기자’가 다 이런 사람들인 건 아니다. 이권, 청탁, 공갈 등으로 금품 수수를 일삼은 악덕기자들 또한 적잖았다.
세월이 흘렀다. ‘해직기자’란 명칭이 무조건 정의의 필봉을 휘두른 언론투사로 잘못 조명되고 있다. 진짜 언론투사들 입장에서 보면 옥석이 구분안된 ‘해직기자’란 무더기 이름으로 같은 반열에 서는 게 창피할 정도의 사이비가 수두룩하다.
‘언론사 통폐합’은 우리 언론사에 기록된 또 하나의 수치다. 신군부의 전두환 소장이 이른바 ‘국보위’를 만들어 정권을 장악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남긴 작품이다. ‘해직기자’사태를 내면서 강제로 언론사를 통폐합하는 이중 구조의 언론탄압을 자행했다.
그러나 ‘언론사 통폐합’의 경우, 초법적인 수단은 다분히 부정적이었으나 사실면에선 긍정적인 효과가 컸다. 특이한 건 강제 폐간된 언론사 종사원 중 해직 안 된 대다수의 언론인들 전원은 통합된 큰 언론사에 역시 강제로 구제된 점이다. 이 바람에 삼류 신문사에 있다가 일류 신문사로 가고, 삼류 방송사에 있다가 일류 방송사로 가는 벼락출세를 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그 때 없어진 언론사 가운데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몇 개사를 제외하고는 다 없어져야 할 언론사들이었다. 예를 들면 중앙 일간지에서도 외근 기자들에겐 월급 한 푼 안 준 신문사가 있었다. 월급은 고사하고 외근 기자가 오히려 회사에 월정급을 갖다 바쳐야 했다.
강제 해직, 강제 통폐합의 벼락치기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월급의 강제 인상은 또 다른 벼락이었다. 중앙지의 경우, 대다수가 약 3배나 올랐다. 이밖에 연간 보너스 600~800%, 학자금 등 각종 수당이 나오기 시작했다. 언론사가 대졸 취업자의 인기를 끌어 경쟁이 치열한 입사시험이 ‘언론고시’로 불렸던 연유엔 이런 배경이 있다.
요즘의 언론환경에 개탄의 목소리가 높다. 마치 1980년 언론사 통폐합 직전의 상황을 방불케 한다는 세간의 우려엔 이유가 있다. 중앙지고 지방지고 발에 채이는 것이 신문사다. 여기에 이 정권의 대언론 정책은 한 술 더 떠 아주 지능적이다. 이와 관련한 중앙지 부문은 지방지이므로 말 않겠다. 지방지에 해당하는 ‘지역신문육성법’인가 뭔가도 그렇다. 이 법은 정부가 자기네 입맛에 맞는 전국의 지방지를 골라 돈을 준다는 것이 골자다. 사견으로는 정부가 아무리 지방지일 지라도 신문사에 돈을 준다는 것도, 신문사가 정부 돈을 받아 먹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또 준다는 돈이 말 그대로 신문을 육성할만한 금액도 아니다. 기껏 3억원을 준다고 해도 한 달 인건비도 안 된다. 이런데도 정부가 생색을 내고자 하는 덴 이를 미끼로 하는 복선이 깔려 있다.
정부가 정말 언론환경을 정화할 의지가 있으면 신문사의 경우, 법을 고쳐 등록 요건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 ‘돈 5천만원만 있으면 일간 신문사를 만든다’는 항간의 냉소가 뭘 의미하는 가를 헤아려야 한다. 중앙지든 지방지든 언론의 소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응분의 요건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상당한 자본금을 담보케 하고, 사옥 및 인쇄 등 시설, 그리고 종사원에 대한 상응한 처우 등에 일정 기준을 세워 현지 실사 끝에 신문사 등록을 받든지 말든지 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신문사는 법에 경과기간이 지난 뒤 실사하여 기준에 맞지 않으면 자동으로 등록이 취소되도록 하면 된다.
오늘은 ‘신문의 날’이다. 1896년 4월7일 국내 신문의 효시인 ‘독립신문’이 창간됐다. 우리 언론사 109년 가운데 칼럼자는 42년을 현업에 종사해오고 있다. 신문은 즐겨 보면서 신문을 만드는 사람은 아직도 경원시하는 사회 일각의 풍토가 가슴 아프다. 물론 나 자신부터 반성한다. 그리고 신문환경의 난세를 틈타 아편장사를 독립군 만들기로 기도하는 정부의 농간은 오히려 과거보다 솔직하지 못하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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