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서의 순정
영화 ‘댄서의 순정’은 순수하고 싱그러운 문근영의 캐릭터에 모든 것을 의지한 영화다. 전국 310만명을 모은 ‘어린신부’의 영광에 다시 한번 도전한 작품. 제작진의 선택은 이번에도 주효했다.
옌볜처녀 춤바람 났네
문근영은 여전히 예쁘고, 아니 더 예뻐졌고 더 착해졌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그게 너무나 매력적이다. 영화의 존재 이유가 살아나는 순간이다.
‘댄서의 순정’은 관객의 순정에 호소하는 영화다. 문근영의 순정은 남녀노소에게 일체 거부감 없이 스며든다.
거부감은 커녕 문근영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무장해제당한 관객은 저 밑에 가라앉아 흔적을 찾기 어려웠던 순정을 잽싸게 꺼내들게 된다. 관객이 이처럼 자발적으로 너그러운 관람의 자세를 취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옌볜처녀 장채린(문근영 분)이 위장결혼을 통해 서울에 온다. 스포츠댄서인 나영새(박건형 분)와 짝을 맞춰 댄스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곡절 끝에 ‘조선자치주댄스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언니 장채민을 대신해 온 채린은 춤을 전혀 못춘다. 파트너가 뒤바뀐 사실에 기막힌 영새는 그런 채린을 외면할까 하다 결국 훈련시켜 같이 댄스 대회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노래방에서 ‘난 사랑을 아직 몰라’를 멋대로 열창하던 ‘어린신부’가 이번에는 등려군의 ‘야래향’을 그럴 듯하게 소화하고 삼바춤까지 춘다. 2년 사이 키가 3㎝ 자라 165㎝가 된 문근영은 기존의 이미지를 깨고 꽤 날렵하게 삼바를 소화한다.
골반을 리드미컬하게 흔들고 빠른 스텝을 밟는 그의 모습은 분명 신선한 볼거리. 어여쁜 모습만으로도 만족하겠는데 어른이 되는 중간 과정에서 단련된 춤까지 선사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댄서의 순정’은 문근영이 중국어와 춤 연습에 흘린 땀방울만큼 ‘어린신부’ 보다 업그레이드된 영화다.
여전히 순정만화의 눈높이에 머물고 있지만 그 황당무계함은 ‘어린신부’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여기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키치적 유머도 밉지 않고 완성도를 떠나 기승전결이 또렷하다. 이만하면 오락 영화로서의 정체성은 명확한 것으로 보여진다.
■모래와 안개의 집
화려한 결혼식장. 젊은 남녀가 하객의 축복 속에 식을 올리고 있고 신부의 아버지 매수드 아미르 베라니(벤 킹슬리)가 마이크를 든다. 한때 조국 이란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던 그가 이곳 미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어느 정도 부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추측밖에. 겉보기에는 성공한 이민자 같지만, 매수드의 실상은 판이하게 다르다.
직업은 고속도로 공사장의 막노동꾼, 고급 아파트에 사는 부유한 이민자처럼 보이지만 공사장의 작업복을 고급 정장으로 갈아입은 뒤의 얘기다.
낡아 보이지만,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집. 침대에 누워 아침을 맞는 캐시 니콜로(제니퍼 코넬리)도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듯하다.
바쁜 사람이지만 그래도 남편이 있고, 청소를 안해 지저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대로 아늑한 집이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와 모래처럼, 그녀의 삶도 위태로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남편에게 버림받은 처지, 알코올 중독자에서 벗어나 힙겹게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뒤뚱거리며 삶이라는 힘겨운 길을 걷고 있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일 때문에 서로 얽히기 시작한다.
캐시는 세무당국의 실수로 집이 경매로 내 놓이는 처지에 처하고 매수드는 이 집을 싼 값에 구입한다.
캐시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유산이며 유일하게 자신이 기댈 곳인 이 집을 그것도 자신의 잘못도 없는데 빼앗길 수는 없는 일. 집을 비싼 값에 되팔 생각인 매수드도 이 집은 막내아들의 학자금이 될, 그래서 넘겨줄 수 없는 밑천이다.
‘모래와 안개의 집’(29일 개봉)이 그리는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들이다. 세상은 답답하게 막혀 있을 뿐, 비극적인 결말은 삶에서 이미 예정돼 있던 듯하며 힘겹게 절망을 극복해봤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괴로움이다.
인간의 의지라는 게, 순진하게 꿈꿔보는 희망이라는 게 작은 의미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두 사람 사이의 얽힘은 경찰관 레스터(론 엘다드)의 등장으로 더 꼬여만 간다.
캐시를 돕던 그가 잘못한 것은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 부인과 자식을 버린 그는 경찰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매수드를 위협하며 가정과 직업이라는 그동안의 규범을 벗어던진다.
점점 복잡해지던 상황은 캐시가 총을 들고 매수드의 집으로 향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트리플X2:넥스트 레벨
리 타마호리 감독은 역시 파워풀하다. 이 영화의 감독이 그리는 것을 알고보면 “과연~”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사의 후예’에서 보여준 가공하지 않은 폭력성은 ‘007어나더데이’에서 자본과 반갑게 악수를 했고 결국 ‘트리플X2:넥스트 레벨’에서는 ‘물 만난 고기’처럼 팔딱거린다. 그는 그야말로 마음껏 때려부수고 폭파했다.
3년 만에 등장한 ‘트리플X’의 속편은 감독과 함께 주인공까지 바꿨다. 전편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빈 디젤은 개런티에 불만이 있었던지 속편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극중에서는 그가 죽은 것으로 처리됐다.
영화는 그토록 뛰어난 비밀 요원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한채 새로운 요원을 선보인다. 랩 가수와 배우를 오가며 활동하는 흑인 스타 아이스 큐브(36)다. 아이스 큐브의 발탁은 인권영화가 아님에도 흑인 주인공을 내세우는데 대단히 개방적으로 변한 할리우드의 최근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는 흑인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이 과거에 비해 놀랄만큼 편해졌다는 얘기. 동시에 흑인주인공은 미국 내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에도 부합한다.
더구나 아이스 큐브가 윌 스미스나 덴젤 워싱턴처럼 잘 빠진 흑인스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 더욱 눈길을 끈다. 그야말로 ‘B급 흑인 배우’의 등용인 것. 그러나 이 같은 제작진의 개방적인 사고와는 별개로 영화는 주인공에 의존하지 않는 영리함을 보였다.
소도둑처럼 생긴 큐브의 액션 연기는 굼뜨고 투박하다. 빠른 발차기나 총쏘기, 고공 다이빙 대신 도끼로 장작을 패야할 것처럼 생겼으니 그에게는 도무지 ‘스타일’이 안 나온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인지 영화는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을 못차릴만큼 격렬하게 요동친다.
주인공에게 시선이 머무르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며 여기저기서 터뜨리고 때리고 부순다. 전편이 익스트림 스포츠의 재미를 줬다면, 이번에는 탱크와 각종 첨단 무기를 미국 수도 워싱턴으로 끌고 와 ‘불꽃놀이’를 벌였다. 여기에 자동차 마니아들의 혼을 쏙 빼놓을 근사하게 빠진 명차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29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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