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 ‘2題’

영국은 6·25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유엔 참전 16개국의 일원이다. 보병여단 및 해병특공대, 항공모함 1척이 포함된 함정 17척 등으로 총 병력 1만4천198명이 참전했다. 총병력 30만2천483명이 참전한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규모가 컸다.(참전 16개국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프랑스·필리핀·터키·타이·네덜란드·그리스·에디오피아·콜롬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벨기에·룩셈부르크)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고지는 영국군에게 잊을 수 없는 격전지였다. 1951년 4월 글로스터 대대가 중공군 63사단을 맞아 벌인 혈전 끝에 대대 병력 622명중 583명이 죽고 39명만이 살았다.

이 전투기념비에서 지난 24일 영국군 참전용사 50명과 전사자 유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졌다는 설마리전투 54주년 기념행사 보도는 숙연케한다. ‘영국군 정복에다 스코트랜드 전통 의상의 연주자가 울리는 백파이프 소리에 일제히 발맞추는 발걸음엔 흐트러짐이 없어 곳곳한 자세와 강렬한 눈빛은 50여년전의 젊음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다’는 기사는 백발 노병들의 기개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대한재향군인회 초청으로 이같은 추모 퍼레이드를 가진 참전 용사들은 파주지역 중고등학생 장학금으로 1천800만원을 내놨다.

더욱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설마리전투 생존과 스콧 베인브리지씨의 재로 변한 유골을 이곳에 뿌린 사실이다. 당시 이등병이었던 베인브리지씨는 “한국에 유골을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겨 전우들의 거수경레 속에 한국 산하의 흙이 되었다.

같은 날, 인천국제공항에서는 2002년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고(故)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씨(33)가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고국을 떠났다. ‘서해교전전사자추모본부’ 대표를 맡았던 그녀가 모든 걸 버리기까지는 정부의 냉대를 견디다 못한 분노의 폭발이었던 것 같다. 주기(週忌) 때마다 정부측에서 얼굴을 비치기는 커녕 오히려 행사에 제한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방인(異邦人)의 참전용사 유해는 우리 땅에 묻히려 오는 데, 전사한 우리의 참전용사 부인은 고국을 떠나야하는 나라안 풍토가 참으로 부끄럽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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