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의 특색 있는 공연들을 한 곳에서 펼쳐 보이는 축제마당은 즐거움이 넘쳐흐른다.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해 예술가들은 청신한 자극을 받아 자기계발의 계기로 삼을 수 있고, 시민들은 극장문화를 친숙하게 접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축제의 진정한 즐거움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작업을 하는 동안 그들의 문화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하고, 즐거움을 한껏 만끽할 수도 있어 축제는 좋은 것이다. 이제 음악극축제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국내외 15개 단체의 공연을 진행하느라 스텝들은 거의 그로기 상태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축제 참가자들의 다양한 삶의 표정을 엿보는 즐거움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후츠반극단은 수입을 전 단원이 균등하게 나누는 극단이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순진무구한 사랑을 나누는 남녀 주인공은 한국에 오기 전까지 부부였지만, 얼마 전 여배우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협의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공연이 끝나면 지하철역사 시장에서 딸의 선물을 함께 고르기도 하지만, 호텔에 돌아와서는 각기 다른 방으로 헤어지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기욤은 아직도 속으로는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한 상태이다. 통역을 맡은 자원봉사자는 역전 포장마차에서 새벽까지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일이 하루의 마무리 일과였다. 아무리 쿨한 서양의 젊은이라 해도 이별의 아픔을 다스리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인가보다.
축제의 마지막 작품인 와유는 인도네시아어로 은총을 뜻한다고 한다. 사람 이름 앞에 와유를 붙이기도 하는데 이는 애정과 존경의 최상급 표현이라고 한다. 와유는 최근 10여년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다문화교류 작품이다. 와유는 현대음악의 거장 리게티의 곡을 벨기에가 자랑하는 장 미셸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하선해씨가 인도네시아 무용수를 데리고 안무한 세계 초연작이다. 독일 프로듀서, 말레이시아 조명디자이너, 영국 무대감독 등 그야말로 세계인들이 함께 모여 마무리 연습에 몰두하고 있어 우리 공연사에 기록될만한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한 편이다. 그러나 작품을 위해 집을 담보하여 제작비를 마련한 하선해씨의 투철한 예술혼이 세계의 예술가들을 감동시킨 것처럼, 우리 역시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기에 완성도는 어느 공연보다도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술과 재정의 밀월관계는 언제쯤 가능해질 것인가.
여행을 하면서 모두들 느끼는 일이지만 사회주의국가 사람들은 쉽게 친해진다. 소박한 태도와 상대방을 신뢰하는 표정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체코 국립마리오넷극단 사람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프라하여행의 필수 코스라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 공연단은 한국에 오기 전부터 프라하극장 객석의 30%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에서의 공연에 호기심도 많았고 기대도 많았다. 고양 어울림누리극장에서의 공연에 이어 내년에는 모 방송국의 초청으로 3주 정도의 공연을 제의받고 무척이나 즐거워하였다. 인형조종술이 정교한데다 자녀와 함께 클래식을 즐기는 가족단위의 관객들로 극장은 붐볐고, 아시아무대에의 성공적인 데뷔로 공연자들 역시 만족해하였다. 축제 기획자에게 작은 보람을 안겨준 따뜻한 공연이었다.
축제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하다. 그러나 연극을 통해 사람과 사람간의 이해를 높이고 우의를 다지려는 깨끗한 영혼과 순수한 열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결같다.
/ 구 자 흥 의정부 예술의 전당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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