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의 30%가 65세 이상인 사회를 상상해 본다. 초고령사회 치고도 가히 위기 수준이다. ‘나라가 거덜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산성은 극소화되고 소비성은 극대화되는 게 초고령사회다.
우리 나라가 이대로 2050년쯤 가면 이런 초고령사회가 된다. 먼 것 같지만 멀지않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노인이 되면 이러한 기형적 사회가 된다. 초고령사회가 아닌 고령사회만 되어도 인구문제가 심각해 진다.
우리는 곧 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의술과 의료장비의 눈부신 발전이 해가 다르다. 인간의 수명은 장수시대로 가면서 신생아 출산은 줄어든다. 노인은 비노동인구다. 사회복지대책 등 복지수요는 증가하는 데 비해 이를 충당할 노동인구는 감소된다.
아들 딸 구별않고 많이 낳는 것이 ‘애국부부’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다. 하나 아니면 둘이다. 숫제 아이를 낳지않는 부부도 있다. 이같은 신세대 부부의 생각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도 많이 낳기가 막상 두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당장 먹고 살기가 바쁜 탓에 키우고 공부시키고 장가 시집 보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정부가 백성들을 잘 살게 만들어 아이를 더 많이 낳고 싶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출산 장려책이다. 무슨 혜택을 주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지금처럼 살기가 어려워서는 출산을 아무리 장려해도 효과가 있을 수 없다.
하긴, 지금보다 훨씬 못먹고 못살던 옛날에도 아이를 생기는 대로 낳았다. 농경시절엔 자녀가 많아 노동력이 풍부한 게 자랑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시대가 달라졌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이미 거쳤다. 정보사회 들어서도 벌써 고도로 치닫고 있다. 정부의 육아정책이 맞벌이 부부 가정에 딱 맞는 현실화가 요구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한불교조계종, 한국천주교교주회의 등 종교단체가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문제 대책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인구의 미래 재앙을 종교계에서 보다못해 나선 것은 매우 뜻깊다. 하지만 가임여성에게 ‘애국부부’가 많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은 역시 정부의 책임이다. 한데, 이게 잘 될 것 같지않아 걱정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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