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번 울만하구나’ 요동벌을 달리는 동안 박지원의 말이 내내 울려왔다. 당시 그에게는 조선의 산하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비좁고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광활한 벌판을 맞닥뜨리자 이런 일성이 터져 나왔으리라.
과연 끝없이 이어지는 벌판의 지평선은 가슴이 탁 트이도록 시원했다. 전날 밤 장보고의 옛 해상로를 상상하며 망망대해 위에서 그려본 호쾌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고구려의 옛 땅에서 교차할 만감에 대비해 가슴에 얹어둔 성돌 하나가 함부로 들뜨지 말라고 타이르고 있었다. 고구려 역사도 모자라 발해의 역사까지 강탈하는 중국의 벌건 눈빛에 온 나라가 들끓은 게 엊그제건만, 그 비분강개는 어느새 숙은 듯하지 않은가.
장군총과 광개토왕릉비, 오녀산성, 국내성, 백암성 등을 보는 동안 우리는 씁쓸한 마음을 자주 추스려야 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갇힌 고구려 유적을 꿋꿋이 읽어내기 위해서는 호석(護石·장군총의 외벽을 받치고 있는 12개의 돌) 같은 마음의 기둥이 필요했던 것이다. 오녀산성에서는 해발 820m의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고구려의 정기와 기개를 품었다. 마침 비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고구려 전기의 수도였던 그 주변의 웅혼한 기상을 각자의 가슴속에 심었다. 그리고 다시 백암성에 올라 고구려 산성의 위용에 감탄하면서 ‘빼앗긴 들’에 두고 온 우리의 역사를 깊이깊이 담았다.
이러한 고구려의 정신과 축성술 그리고 미학이 화성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고구려 성에 나타나는 우리 민족의 얼과 미감을 가장 아름답게 집약한 성이 바로 우리의 화성인 것이다. 역사의 뿌리와 정신의 힘을 확인하면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화성의 성벽이며 치 등을 비다듬어 보았다. 그리고 화성을 그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고 내세우기 전에 그것의 가치 있는 계승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더불어 생각했다.
고구려의 영광과 그 궤적의 답사는 쓰라린 속울음을 되씹는 길이었다. 연암이 말한 ‘울음’에는 약소민족의 설움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는 행간에서 아픈 소회를 읽지 않을 수 없다. 하여 다시 ‘요동에도 또 하나의 평양’이 있었다고 한 연암의 말을 떠올리며, 저 넓은 요동이 우리 땅이라면, 하는 안타까움을 어쩔 수 없이 꺼내보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허망한 바람이나 감상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국제적 역학관계를 냉정하게 내다보며 과거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고구려를 오늘 여기의 삶 속에 지속적으로 되살리는 일이 필요하다. 동북공정의 충격 속에서 고민했던 여러 방안을 생활 속에서 꾸준히 실천해가야 할 것이다. 그 중에도 문화콘텐츠의 개발은 장기적인 투자와 노력을 요한다. 나치 만행의 고발에는 아우슈비츠 같은 상징적 장소도 효과적이지만, ‘쉰들러 리스트’ 같은 영화 한 편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영화가 전 지구적 감염력을 확보한 지 오랜 지금도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핍진하게 그린 영화가 별로 없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영화뿐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 미술 등 문화 전반에 걸친 고구려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숙고해야 한다.
고구려, 그 ‘빼앗긴 들’에서 깊이 삼킨 속울음을 우린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큰 울음’은 곧 ‘큰 웃음’이니, 우리 모두가 크게 웃을 그날을 위해 진정 ‘큰 울음’은 남겨둘 것이다. ‘울음터’ 안팎에서의 착잡한 마음을 그렇게 일으키며 보니, 동행한 학생들 눈빛이 더 뜨겁게 다가왔다.
/정 수 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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