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오래됐다. 헌정 57년 동안에 18년 여를 지속하기는 제6공화국이 처음이다. 1공은 13년, 2공은 9개월, 3공은 10년, 4공은 8년, 5공은 7년을 지속했다. 6월 항쟁으로 쟁취한 것이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현행 민주화 헌법이다. 4공 때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 5공 때 대통령선거인단 등이 장충체육관에서 간선으로 뽑던 이른바 ‘체육관 대통령’ 출현을 없앴다. 6공화국 헌법은 1987년 10월 국민투표에 의해 확정됐다. 그러니까 헌정상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다 같은 6공 정권이다. 굳이 따지면 노태우는 6공1기, 김영삼은 2기, 김대중은 3기, 노무현은 4기라 할 수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정권이 6공에 뿌리를 둔 사실을 마땅치 않게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뭣보다 신군부 출신의 노태우가 6공의 원조인 점은 아주 견디기 힘든 것으로 짐작이 간다. 이래서 집을 다시 짓고 싶어 한다. 개헌을 통한 제7공화국 건설을 설계하는 게 ‘연정론’의 배경인 것으로 분석된다. 실언(失言)이고 망언(妄言)이고, 강변(强辯)이고 다변(多辯)이고 간에 그 속엔 계산된 속셈이 없지 않다. 그의 머리는 컴퓨터가 쉼 없이 작동한다.
개헌 의도가 맞다면 대통령중심제의 중임제가 되기 보다는 내각책임제일 공산이 많다. 대통령 단임제가 없어지더라도 현행 헌법 개헌 당시의 대통령은 중임이 배제된다. 이에 비해 내각책임제는 총선에서 승리만 하면 장기 집권이 가능하다. “임기를 단축할 수 있다”는 대통령 말은 하야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재임중 내각책임제로 개헌되면 총리직을 위한 대통령직의 사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노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나면 임대아파트에서 살겠다는 뜻도 비쳤고, 농촌으로 돌아가 살겠다는 뜻도 비쳤지만 당장은 아니다. 먼 훗날의 얘기다. 그는 정치에서 물러가기는 아직도 연부역강 하다는 생각을 갖는 티가 역력하다. 지역구도 타파에 반론은 있을 수 없지만,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능사는 아니지만 지역구도 타파에 다소나마 도움이 된다면 제도개편 논의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연정은 아니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연정 제의는 처음 본다. 더욱이 내각이 국정의 중심에 있다고 믿을 사람은 별로 없다. 대통령 비서실이나 대통령 직속의 무성한 위원회들이 내각을 조종하는 것이 이 정권의 취향이다. 권력을 통째로 줄 수도 없지만 준다고 해도 주인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주인이 내준 권력을 통째로 거둬들이면 권력을 빌려받았던 박근혜나 한나라당은 닭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된다. 이 정권의 실정만 바가지로 뒤집어 쓴다.
대통령은 막판에 열린우리당 탈당의 극약 카드를 내비칠 지 모른다. 그래도 아니다. 내각책임제가 아닌 대통령중심제의 연정 제의는 정당정치에 위배된다. 헌정 질서를 문란케하는 위헌이다. 국민은 노무현에게 대통령직의 권한을 부여했지, 대통령의 권한을 무책임하게 통째로 빌려주라고 뽑아준 것은 아니다. 헌법조항 어디에도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이런 규정은 없다. ‘헌법을 형식논리로 보고 형식논리에 구애됨에 없어야 한다’는 생각은 또 하나의 신형(新型) 독재다.
되지않는 연정을 미끼삼아 빙빙 돌리기 보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떳떳하다. 개헌을 원한다면 당당하게 개헌 카드로 가는 게 옳다. 제2공화국의 장면 정권에서 철저하게 실패한 내각책임제 거론에는 물론 많은 부담이 따른다.
만약 대통령의 본의가 이것이 아니면 연정 얘기는 이제 끝내야 한다. ‘노무현 시대의 마감’을 ‘새로운 출발’이 아닌 지금의 ‘노무현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 진정이라면 본연의 직무에 충실하는 것이 도리다. 6공의 4기 정권은 자신이 선택한 태생적 숙명이다. 제7공화국을 여는 개헌 여부는 임기를 절반 남긴 현직 대통령이 간여할 일이 못된다. 승부사에게도 실패는 있다. 연정론의 승부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충수라는 생각을 갖는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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