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영혼을 갉아 먹는 병’이라고 한다. “암 보다도 무서운 게 치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매로 인하여 개인·가족·사회전체가 치러야 하는 비용은 막대하다. 암은 환자 스스로 겪는 고통이 가장 크지만 치매는 환자보다는 부양 가족, 나아가서는 가족 구성원 전체의 경제적·정서적 파탄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가족관계마저 해체되는 불행을 맞기도 한다. 이 치매 환자가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 정도라니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 국내에서 관리를 필요로 하는 치매환자는 36만여명이다. 그러나 10년 뒤엔 이 수치가 58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조기치매는 일상 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심하진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 등 인지기능이 떨어지다가 치매로 진행된다. 조기 치매 노인은 정상 노인보다 치매로 악화될 가능성이 10배 가까이 높다. 최종적인 진단은 정신과 전문의의 심층면담을 통해 이뤄지지만 일찍 손 쓰면 15%는 예방이 가능하다. 흔히 “건망증이겠지”하고 방심하다가 조기 발견 기회를 놓친다. 조기치매가 노인들의 가벼운 건망증 정도로 경시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치매에 걸리면 병원보다 바로 보호시설을 생각하는 인식이다. 조기 또는 가벼운 치매의 경우 의학적 치료가 큰 도움이 된다. 정부가 치매 대책을 과거 보호시설 확충에서 조기발견·치료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이유다. 시설 수용 이외의 대책이 없는 중증 환자보다 예방과 치료를 겸한 조기 발견이 훨씬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치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암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이 혜택이 확대되고 있지만 고령화로 눈앞에 다가온 치매는 아직도 먼 일로 생각하고 있다. 국가 주도의 체계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8년 전 작성된 치매관리 통계가 활용되고 있는 등 예방과 치료를 위한 기본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등록된 환자도 8년 동안 1만 6천명에 불과하다. 노인수발보장법 제정이 수용시설 미비와 보험료 부담 등의 문제로 연기된 것은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치매는 누구나 걸릴 위험이 있고 누구나 치매 환자를 돌볼 처지에 처할 수 있는 만큼 절박한 사회문제다. 엊그제 세계 치매의 날을 맞아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제부터는 국가가 치매를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 국민이 지켜볼 일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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