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北關)은 함경북도에 있는 땅으로 무역이 성행했다. 조선조 초기에는 여진족이 두만강을 건너와 소금과 쇠 등을 사갔다. 청나라와 교역을 갖기 시작한 것은 중기에 들어서다. 교역은 철따라 일정 기간에만 열렸다. 교역이 열린 것을 일컬어 ‘북관개시’(北關開市)라고 했다.
임진왜란 당시 승승장구하던 가토 가요마사(加藤淸正)의 군대가 대패한 곳이 북관이다. 이 장거는 정규군이 아닌 수 백명의 함경도 의병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의병은 정문부 이붕수 등이 주도했다. 이를 기리는 ‘북관대첩비’가 세워진 것은 그후 숙종 때다. 북평사 최창대가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에 세웠다. 비의 크기는 높이 190㎝ 폭 66㎝에 두께가 13㎝다.
그런데 ‘북관대첩비’가 없어졌다. 1905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가져갔다. 일본군이 가져간 것은 알았지만 행방은 묘연했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서 발견된 것은 1978년이다. 정부는 줄곧 반환을 요구했으나 일본은 거절했다. ‘남쪽에 줘야 하는 건지, 북에 줘야 하는 건지 몰라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올 6월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관대첩비’ 반환요구가 합의된 덴 이런 배경이 깔렸다. 북측은 일본과 국교가 없어 직접 요구하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다.
마침내 ‘북관대첩비’가 올해 100년만에 돌아온다. 정부는 일본측의 이런 최종 통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되돌려 받으면 보존처리에 이어 일반인에게 공개 전시된다. 그리고는 북측에 넘겨줄 예정이다. 북으로 되돌아 가면 당초에 건립됐던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의 기단석 제자리에 다시 세워질 것이다.
한데 좀 꺼림칙한 게 있다. 돌려받는 덴 야스쿠니 신사의 이사회 격인 총대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총대회가 소집되는 게 바로 오늘이다. 우리는 우리 문화재를 찾아온다. 저들은 빼앗은 문화재를 돌려준다. 이런 데도 절차가 꽤나 까다롭다. 이런 것을 생각해서라도 더는 빼앗기지 않는 힘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 ‘북관대첩비’는 이제 100년의 외출을 마쳐야 한다. 야스쿠니 신사의 총대회를 주목한다./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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