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제발, 벌어먹게 해 주시오’

빚잔치를 하는 재판 절차가 파산이다. 법원의 파산선고를 받으면 빚더미 귀신으로부터는 풀려난다. 재산이 더 없어 다 갚지 못한 빚은 합법적으로 떼어 먹는다. 대신, 알거지가 된다. 길거리에 나앉다시피 된다. 한 마디로 망하는 것이 파산이다. 이만이 아니다. 파산선고로 박탈된 공·사권의 제한을 해제, 그 권리능력을 회복시켜 주는 복권이 있기까지는 사람구실을 제대로 못한다.

차마 못당할 일이 파산이다. 대통령은 아는지 모르겠다. 이런 파산 신청이 줄을 잇는다. 미처 처리하지 못해 미제율이 높아만 간다. 수원지법이 올 상반기동안 접수받은 개인 파산 신청은 1천699건으로 지난 한해 동안의 곱절에 가까운 데 비해 처리율은 811건으로 35.8%에 머문다. 수원지법만도 아니다. 신문보도는 의정부지법이나 인천지법 등 역시 사정은 비슷 비슷한 것으로 전했다. 수도권 법원만도 아니다. 전국의 지방법원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례없이 폭주하는 파산신청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에 영양실조로 죽은 사람이 52명이라는 통계청 발표가 있었다. 이들이 노숙자든 혼자 사는 노인이든 간에 어떻게 이토록 굶어죽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건지 정말 부끄러운 노릇이다. 통계에 안 잡힌 굶어죽은 사람이 몇 배나 더 많을 것 같다.

사회안전망이 잘 발달된 선진 복지사회에도 그늘은 있다. 어찌 파산이 없을 수 있고, 굶어죽는 일이 없을 수 있을까 만은 이건 너무 심각하다.

그런데 탈은 옛 속담대로 주인이 배 부르니까 머슴 배 곯는 줄 모른 데 있다. 어느 때, 어디에든 문제는 다 있게 마련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갖는게 진짜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은 중앙 일간지 경제부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런 생각을 밝히면서 “우리 경제는 전반적으로 잘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예를 든 파산 신청은 민생경제 파탄의 반영이다. 수년 전에 비해 약 100배가 늘었다. 파산은 전에도 있었지만 이렇게 절박하지는 않았다. 한해 동안에 몇 배씩 느는 현상은 노 대통령 치세 들어 더 심화됐다. 이대로 가면 더 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음식점을 비롯한 접객업소같은 자영업은 열 곳이 생기면 일곱 곳은 1년을 못 넘기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채 문을 닫는다. 서민층 가계에 빚없는 가구는 별로 없을 것이다. 법외 파산자는 이미 수두룩하다.

참 기분 나쁜 신문기사를 봤다. 유라시아그룹이 한국 사회를 ‘방향타 잃은 배’로 분석한 보고서 내용이다. 정부의 문제점으로 측근비리(부패척결 무력화), 연정 등 국민정서와 먼 정치 의제(지지도 하락), 즉흥적 발언(국민 실망), 전문성이 결여된 정부 운영(정책수립 차질), 여당 내부 분열(젊은층 지지도 하락) 등을 지적했다. 유라시아 그룹은 세계적인 컨설팅기관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의 정부를 비판해도 우리가 해야지, 남들이 하는 것은 기분이 좋지않다. 문제점 지적이 다 맞는 건 아니지만 과히 틀렸다 할 수는 없다.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이런 가운데 켕기는 것은 일본식 장기불황의 경고다. 이 또한 걱정해 왔다. 다른 문제점 지적은 새삼스럽지 않으면서 장기불황 얘긴 귓등으로 흘리지 못하는 덴 연유가 있다. 먹고 살 걱정이 태산이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지금이라도 달라져야 한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우월감 보다는 성장산업 분야의 정부 역할을 줄여야 한다. 만들어진 ‘파이’를 분배하기 보다는 ‘파이’를 키워 분배할 줄 알아야 한다.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적자재정의 복지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고용과 생산형 복지로 가야한다.

대통령의 말엔 괴벽이 있다. 쉬운 말은 굉장히 쉬운 데, 어려운 말은 굉장히 어렵다는 게 민중의 소리다. 대체로 막말하는 말은 알아듣기가 쉽고, 정책을 말하는 덴 알아듣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먹고 사는 얘기를 꼭 어렵게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티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헤아릴 줄 아는 것은 총명이다. 민중은 이런 총명을 기대한다. 경기불황이 가정파탄으로 많이 번지는 것은 또 하나의 사회 문제다. “제발 벌어먹고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이것이 절박한 민중의 절규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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