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묘지

부산 유엔묘지, 유엔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숙부의 묘소 앞에서 오열하는 50대 조카의 신문보도 사진 한 켠엔 그 숙부의 20대 모습이 오버랩됐다. 늦가을 정취속에 헌화된 묘소의 꽃바구니가 유난히 청초해 보였다. ‘존 헨리 라본’이라고 쓰인 비명 앞에서 울먹이는 ‘존 레게욘 라본’씨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켰다. “한국에 잠들어 있는 삼촌을 꼭 찾아 인사 드려라”는 생전의 아버지 당부에 따라 숙부의 사진을 들고 한국 땅을 밟았다.

지난 24일은 유엔이 창설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영국군 병사는 1952년 젊은 목숨을 한국전쟁 전선에서 바친지 장장 53년만에 그리운 혈육의 방문을 맞이한 것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나라는 16개국으로 30만여 명을 파병한 미군을 비롯해 모두 34만3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참전했다. 이 가운데 3만6천여 명이 이역만리에서 전사했다. 정부는 외국인 전사자 중 유해가 본국으로 이송되지 않은 1만1천여 명의 유택을 부산에 유엔묘지를 마련해 안장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장해간 수가 많아 지금은 2천100여 명의 묘소가 안치돼 있다.

이날 유엔묘지에는 많은 나라의 방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유가족 친지, 혹은 함께 참전했던 노병이 전사한 전우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기도 했다. 하나같이 반세기가 넘었지만 전쟁의 참혹함이 아직도 깊은 상처로 남은 현실에서 고인을 그리워하며 추모했다.

유엔군만이 아니다. 국군의 젊은이들은 더 많이 전사했다. 인민군도 중국의용군도 숱하게 전사했다. 어느 목숨이라고 소중하지 않은 목숨은 없다. 전쟁이 원초적 죄악이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38선의 인민군들에게 내린 일제 공격 명령, 그러나 이런 전쟁의 수단화는 어떤 명분으로든 합리화될 수 없다. 만 3년1개월을 이 강토의 산하를 시산혈해로 물들인 비극의 참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국가보훈처가 ‘유엔의 날’을 맞이하여 영국·터키·캐나다 등 11개국 41명의 한국전쟁 참전 유가족들을 초청한 것은 잘한 일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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