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권은 한반도의 전쟁 재발을 부정한다. 북의 남침 재발을 우려하면 “정신나간 소릴 한다”고 한다. “지금이 어느 시댄 데 꼴통 보수같은 말을 또 한다”며 비웃는다. 산업화 세력의 정권에서 자행된 의문의 사건을 규명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불확실한 정황을 자의적 구미에 맞추어 꿰맞추는 추정 시나리오는 옳은 과거사 재평가가 아니다.
이 정권은 모순 투성이다. 북이 전쟁을 일으킬 염려는 없다면서, 북녘 동포의 인권 문제보다는 한반도 평화가 우선이라고 우긴다. 뒤집어 말하면 이북 동포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 전쟁이 난다는 것이다. 의문의 과거사는 인권에 초점을 맞춰 재단하면서 현대사의 잔혹한 북녘 동포의 인권 유린엔 묵과하는 의도적 모순은 인식의 불균형이다. 행여 평양정권의 비위를 거스를세라, 이리 저리 눈치를 보아가며 올해도 1조5천억원 상당이나 퍼 준 대북지원은 봉(鳳)노릇 한 것이지 상대가 진정으로 고맙게 여기는 도움을 준 것이 못된다. 전쟁의 염려가 없는 진정한 남북 평화, 참다운 대북 지원은 따질 건 따져가며 추진해야 신뢰관계가 제대로 형성된다.
지금 우릴 먹여 살리는 것은 이 정권이 아니고 세계 11대(大) 경제규모에 드는 기업이다. 이런데도 정권은 기업을 박대한다. 기업의 투명성 요구가 기업의 적대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3년 가깝도록 기업을 위해 해 준 것은 법인세율을 2% 포인트 낮춰준 것 뿐, 권력의 칼날을 휘두른 온갖 규제로 주눅들게 만들었다.
사학(私學)의 비리를 예방한답시고 수백억, 수천억원의 사재를 들여 세운 사립학교 재단에 백수의 개방형 이사를 끼워들여 ‘감 놔라 배 놔라’하게 됐다. 자율성과 재산권의 침해가 사회주의를 방불케 한다.
‘25시’는 2차대전 후에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가 쓴 소설 제목이다. 획일주의의 인간사회 위기를 비판하고 나섰다. 1일 24시간이 아닌 ‘25시’는 해방되지 못한 인간사회의 절망적 시공(時空)을 뜻한다. 우린 지금 ‘25시’에 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해도 구원의 시공으로 탈출해야 한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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