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토록 청려장(靑藜杖) 지팡이를 짚고 봄을 찾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매화나무 가지 끝에 봄이 와 있더라”는 글처럼 매화(梅花)는 봄을 알리는 꽃이다. 맑은 향기와 청아한 자태로 봄소식을 전한다. 매화는 가난하여도 그 향기를 파는 일이 없다는 맑고 지조 높은 마음씨를 우리 민족에게 심어 주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라는 가사에 나오는 살구꽃과 복숭아꽃은 우리 민족이 꽃피는 궁궐 안에서 봄이라는 시간을 보내었음을 말해 준다.
여기에 오얏꽃이 뒤질세라 피어난다. 복숭아꽃은 “도화는 흩날리고 녹음은 퍼져 온다/ 꾀꼬리 새 노래는 연우(烟雨)에 구을거다/맞추어 잔 들어 권하랼 제 담장가인(淡粧佳人) 오도다”라는 옛시조를 생각나게 한다. 살구꽃은 그 화사한 꽃색과 향기로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고 겨우내 음산하게 웅크려 있던 마음과 몸을 밖으로 끌어낸다.
산수유의 노란 꽃은 낮게 떠 있는 구름같다. 경기도 등지의 중부지방에서는 이 나무를 동백나무라고도 불렀다. 역시 노란꽃으로 산을 수놓는 생강나무는 크게 자라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산야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가지에 다닥다닥 붙은 노란 꽃의 모임은 산속에 감추어져 있던 정열이 밖으로 터져나오는 봄의 아름다운 아픔이다.
봄을 수놓는 노란 꽃에는 개나리와 황매화도 어여쁘다. 개나리는 왕성한 번식력과 토질을 가리지 않아 어디에서나 군집을 이루며 피어 난다. 개나리꽃을 입에 물고 노는 병아리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꿈과 평화를 심어준다. 진달래는 우리나라 산야에 특히 많아서 노래와 詩에 많이 등장할 뿐 아니라 화전놀이 등의 세시풍속과도 관련이 깊다. 철쭉은 설악산·한라산·소백산 등지의 꽃이 유명하며 이른바 ‘철쭉제’는 산신제를 겸한 등산인들의 연례행사로 치러진다.
초봄을 장식하는 목련은 우아하다. 목련은 우리나라 산에서 자생하는 나무이지만, 외국에서 들여온 백목련도 목련처럼 깨끗한 모습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꽃다운 애정과 향기로운 생각이 얼마인지 아는가, 집을 떠난 산승이 목련꽃으로 인하여 출가를 후회하더라(芳情香思知多少 惱得山僧悔出家)”는 목련꽃이 지닌 가치를 표현한 詩다. 목련은 절에 많이 심는 자목련과 함께 종교적인 분위기를 은은히 풍긴다.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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