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신농촌운동’

주막이 없어졌다. 젊은이들은 젊은층대로, 노인들은 노인네대로 막걸리에 밤낮동안 찌들어 살던 주막이 없어졌다. 노름방이 없어졌다. 겨우내 도박으로 살림을 거덜내곤 하여 고향을 떠나게하는 예가 잦았던 농촌의 노름방이 없어졌다. 초가지붕이 없어졌다. 지금은 초가를 옛 정취의 정서로 보지만 그 무렵의 초가는 찌든 가난의 상징이었다. 동네길을 넓히고 농로를 만들어 영농 기계화가 시작된 것도, 영농의 과학화와 특용작물 재배에 눈뜬것도 그 때부터다.

새마을운동은 이토록 농·어촌의 의식구조와 생활구조를 바꿔놨다. 수 천년동안 그렇게만 살아왔던 전래의 농촌구조를 현대의 농·어촌으로 탈바꿈한 시발점이 새마을운동이다. 1970년 4월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 시·도지사회의에서 근면·자조·협동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새마을운동을 제창,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면서 농촌개혁의 신화가 창조됐다.

노무현 정권 치하는 새마을운동을 유신독재 수단으로 폄훼하지만 당치않다. 국회를 해산하는 등 유신독재가 자행된 것은 1972년 10월 27일이다.

중국 공산당이 어제 공산당 중앙학교에서 한국의 새마을운동 학습회를 가졌다. 후진타오(胡錦濤)국가 주석과 31개 성 대표, 인민해방군 주요 지휘관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이미 수년 전 새마을운동을 도입, 이를 모델로 한 ‘신농촌운동’을 세워 올해부터 2010년까지 본격화하기에 앞서 고위층 학습회를 먼저 가진 것이다. 중국 9억 농민들에게 지난날의 우리처럼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하는 중국판 새마을운동의 열기가 확산될 전망이다. 새마을운동은 중국만이 아니고 동남아 여러나라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온 연구의 대상이다.

박정희가 유신독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새마을운동을 그가 시작했기 때문에 부정해야 한다고 보는 시각은 치졸하다. 이 정권의 과거사 정리는 역사를 거꾸로 뒤집으려고 하는 아주 위험한 함정이 있다. 중국 공산당까지 배우고 연구하는 새마을운동을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인 것이 협량한 이 정권의 좌파 성향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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