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 볼’ 시비

1895년(고종 32년) 서구식 이발이 시작된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의 머리는 가위로 상투를 잘랐다. 이해 11월 단발령을 반포한 고종은 스스로 제일 먼저 상투를 잘랐다.

이 무렵에 이발 기구로 들어온 바리캉(Bariguand)은 프랑스어로 그 나라의 ‘바리캉 마르’회사가 제작한 명칭을 따서 부른 것이 오늘날까지 머리깎는 이발 기구를 바리캉이라고 부르게 됐다.

서양에서는 원래 이발은 외과의원에서 겸했던 걸로 전한다. 지금의 진료과목으로 보면 머리털은 피부과에 속하는 데 예전엔 진료과목이 세분화되지 않아 외과 소관이 됐던 것 같다.

그런데 옛 서구사회의 외과의원은 간판이 적색 백색 청색으로 되었다고 한다. 이발소의 간판격인 지금의 빨간색 하얀색 파란색 줄 무늬가 비스듬히 표시되어 불이 켜진 가운데 돌아가는 원통형 사인 볼이 그같은 옛 외과의원 간판에서 유래한다. 사인 볼은 이제 외과의원에선 오래전에 사라진 대신에 이발소의 국제적 공용기호가 됐다.

한국이용사회가 사인 볼 문제를 들고 나왔다. 안마시술소나 남성 휴게텔 같은 데서도 사인 볼을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모범 이용업소마저 부정적 이미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가 전통적인 사인 볼을 이발소만 쓸 수 있도록 공중위생관리법을 개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요즘은 남자들이 이발소가 아닌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는 사람이 많다. 이용업계로 보면 업권을 침해 당했다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이발하는 데 필요한 바리캉을 미장원에서 사용하는 것은 위법행위라는 주장이 한때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미장원측에서도 할 말은 있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 것이나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는 것이나 그게 그것으로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시대는 달라지는 가운데, 경기 불황이 오래 가다보니 이런 업권 다툼도 나오고 이발소 아닌 업소의 사인 볼 시비도 나온다. 참 딱한 일이다.

/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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