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회의원이 술자리에서 탈선행위를 해 망신을 당하고, 정치적으로 낙마했다. 여론은 결코 관대하지 않았다. 술자리에서의 일어난 일 또는 실수에 대해선 비교적 관대하던 우리 사회가 달라진 것이다.
그나마 약간의 동정적인 시선은 그가 잘못된 우리의 음주문화의 희생자라는 점이다. 그러한 생각도 잘못 얘기됐다가는 따가운 여론의 역풍을 만남으로 모두들 조심한다. 잘못된 음주문화니 나아가 잘못된 군사문화 유산이니 하는 말들도 나왔다. 필자는 잘못된 음주문화니, 군사문화니 등의 표현들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음주 관습이라든가 비문화적 뭐라든가 하는 식으로 말해야지 잘못된 것, 버려야 할 것, 반문화적인 것까지 일단 문화로 얘기되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된다.
폭탄주로 대표되는 폭음과 그렇게 술을 마셔야 사내답다고 생각하는 음주관습은 마땅히 시정되고 버려져야 할 유산이지만, 그 잘못된 관습은 언제부터 비롯된 것인가?
여러 가지로 얘기될 수 있지만, 필자는 뭣보다도 식민지의 역사속에 그 씨앗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식민지를 통치하는 사람들은 식민지 백성들을 자기들 구미에 맞게 길들이려고 한다. 그러한 정책의 하나가 저항정신을 가질만한 야무진 사내들을 주정뱅이로 만드는 것이다. 주정뱅이가 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면 그는 이미 저항정신을 상실하고 길들여진 것이다. 그는 요경계 인물 리스트에서 빠지고 매장되는 것이다. 일제도 우리나라를 다스리는데 그러한 수법을 썼다고 생각되고 우리의 유능한 청년들이 자포자기로 폭음족에 가담하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식민정책을 뒷받침해 준 것이다.
지난해 몽골 울란바토르에 갔는데,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중국이 몽골을 지배할 때, 그리고 러시아가 몽골을 지배할 때 폭음하는 풍토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날씨가 추워서 적당히 술을 마시는 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폭음은 오히려 동사의 위험이 있는데도 폭음을 해야 칭기즈칸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는 것처럼 폭음을 예찬했으며, 그것도 그들의 식민정책의 일환이었다고 한탄하는 얘기도 들었다.
지난 80년대 아직도 소련의 공산체제가 건재할 무렵, 필자는 연극관계 국제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동백림(동베를린)에 갔었다. 해가 저물고 저녁이 돼 그곳 연극인 친구와 거리에 나갔는데 깜짝 놀랐다. 카페나 비스트로가 조용히 술마시는 사람으로 가득한 것이다. 공산국가에 술을 마시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가? 오락이 거의 없는 사회에서 술 마시는 것은 유일한 낙이라 할 수 있고 술을 마신다는 건 평범한 사람으로 인정받아 요주의 인물에서 제외된다는 것이었다. 요주의 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알코올 중독을 가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 중국 역사에서도 대권에 뜻이 없다는 것으로 가장하기 위해 술에 취해 주정뱅이를 연기하고 때를 기다리던 왕자나 대군 등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폭음과 알코올 중독으로 가는 음주관습은 식민지 통치자만 아니라 독재자들에게도 중요한 통치수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식민지 통치시대, 독재정권에서 폭음과 그 결과 일어나는 추태에 대해 관대했지만 민주사회 여론은 결코 관대하지 않았다. 폭탄주로 대표되는 폭음의 관행은 이제 우리 사회 정치판을 위시한 모든 분야에서 추방될 때가 왔다. 폭음은 일종의 열등의식의 발로라면 이제 식민지적 열등의식에서 벗어날 때가 온 것이다.
/김 정 옥
얼굴박물관장·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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