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재벌과 변호사

범인을 비호하는 변호사란 직업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적에 가진 이런 의문은 그 앙금이 지금도 아주 없진 않다. 물론 안다. 부당한 인권 침해를 방어하고 억울한 피의자나 피고인의 혐의사실 및 공소사실로부터 무혐의나 무죄를 이끌어내는 변호사업의 순기능을 인정은 한다.

그러나 역기능도 있다. 가령 민사사건의 소송 당사자인 원·피고가 법정대리인을 선임할 변호사를 고를 땐 원·피고 자신들은 모르지만 같은 한 변호사에게 상담하는 우연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그 변호사는 원·피고 모두에게 승소의 최선을 다짐한다. 결국 변호사의 사건 수임은 소송다툼 내용이 지닌 정의가 아니라, 성공보수가 유리한 쪽으로 결정되는 수가 많다.

이와 비슷한 의문은 형사사건에도 없지 않다. 이번 현대차·기아그룹 사건에서 보여준 변호인단 구성 면모는 이를 실감케 한다. 유재만 변호사는 대검 중수부 2과장 당시, 이회창 후보측에 현대차그룹이 현금 100억원을 전달한 세칭 ‘차떼기’를 적발해낸 2003년 대선자금 수사의 민완 검사다. 이병석 변호사는 현대그룹의 150억원 뇌물사건을 수사했던 전 대검중수부 검사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부자가 검찰수사의 초점인 경영권 승계, 비자금 조성, 계열사 부당거래 혐의에 대한 방어를 위해 변호인을 선임하는 것은 기본적 권리다. 또 변호인은 예컨대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는데도 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인신구속의 남용’이라는 주장 제기가 가능하다. 그룹측은 이밖에도 최경원 전 법무부장관, 이명재 전 검찰총장, 김희선 전 서울서부지검장, 이승섭 전 서울지검 첨단범죄수사부장 등 주로 검찰 출신의 매머드급 변호인단을 20여명의 변호사들로 구성했다. 변호사 비용이 무려 100억원 대일 것이라는 설이 파다한 것으로 들리고 있지만 확인되진 않았다.

어떻든 ‘현대 킬러’가 아니면 적어도 재벌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중견 간부 검찰출신이 대거 변호인으로 선임된 것은 아이로니컬한 현상이다. 이외에도 김재기 전 수원지검장은 그룹 상임법률고문으로, 신건수 전 서울고검 형사부장은 기아차 사외이사로 있다. 분명한 것은 사건수임, 취업의 자유에 의해 현대차·기아그룹과 맺어진 검찰출신의 이같은 인연은 돈과 연관된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정몽구 현대차·기아그룹 회장 부자 수사에 심혈을 기울여 고군분투하고 있는 대검중수부 수사팀은 더러는 변호인단의 후배들이다. 박영수 중수부장 외에 채동욱 수사기획관이 있고, 최재경 1과장 여환섭 검사 등은 정 회장 신문을 직접 맡았다. 총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류작성 보고는 재벌 비리의 과보호가 재벌 비리의 악순환을 낳고 있다고 보는 사회정서와 대체로 맥을 같이 한다. 정 회장 구속이 곧 현대차 위기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수사팀은 오히려 이번 기회가 전문경영인을 키우는 여건 조성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아무튼 경제위기의 상습적 추론을 내세워 재벌 비리를 더 이상 관대하게 넘겨선 만민평등의 법치주의가 유린된다. ‘재벌공화국’의 오만을 이젠 끝내야 존경받는 탄탄한 재벌로 거듭난다. 그런데 정상명 검찰총장은 최종 결정을 놓고 고심했다. 수사팀의 패기있는 혁신적 명분과 예의 수구적 위기논리 사이에서 고민한 것으로 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자신이 밝힌 화이트칼라 범죄 엄단에 첫 시험케이스가 됐다.

정 회장을 겨냥한 후배 수사팀의 예봉에 방패로 나선 선배 변호사들의 진심은 뭘까,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내심 어떻게 보는 것인지 궁금하다. 민주주의의 다원화사회는 각기의 직분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지만 실체적 진실은 둘 일 수 없다. 다만 다름이 있다면 견해 차이만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정몽구 현대차·기아그룹 회장의 속내다. 변호사비용 100억원 대 설이 설사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그룹 차원에서 부담할 것이고 또 사재로 댄다 하여도 재산이 두 자리 조 단위인 그로서는 코끼리 비스킷 정도밖에 안 된다. ‘유전가사귀’(有錢可使鬼)란 빗댄 말이 있다.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 것이다. 무당 귀신을 부리는 게 아니고 사람 귀신을 부리는 것이다.

검사는 사회공익의 대표자이고 변호사는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 역시 대쪽 검사 출신으로 고인이 된 최대교 변호사는 정의롭지 않은 사건은 선임료의 다과를 불문하고 맡지 않기로 유명했던 분이다. 짐작컨대 정 회장은 이번에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속으로는 ‘당신들도 옷을 벗으면 내가 고용한다’는 자만심을 가졌을 수가 있다.

재벌이 국민자본으로 온갖 비리를 저지르며 부정축재를 거듭한 돈으로 경제위기설의 우산 보호속에 부리는 농간을 언제까지 인내해야 하는 건지, 냉정히 생각해봐야 할 때다.

/임 양 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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