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FF2006] “영화의 결말은 내가 아니라 축구가 만들었다” 개막작 감독 파나히

2006 독일월드컵 본선진출국 이란. 그러나 정작 이란 여성들은 경기장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의 감격을 함께 나눌 수 없었다. 여성의 축구장 출입이 금지돼있기 때문. 그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 전주영화제 개막작에 올랐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을 앞둔 27일 오후 1시 개막작 ‘오프 사이드’(이란·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시사회가 열렸다.

이란,여성의 축구장 출입이 금지된 나라

‘오프사이드’는 이란 여성의 축구경기장 출입 금지를 다룬 영화다. 이란의 2006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을 판가름하는 대 바레인 전을 배경으로, 경기를 보고싶어 남장을 하고 스타디움 진입을 시도하는 열혈소녀들의 모습을 그렸다.

시사회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영화는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금지된 것을 다룬다”며 “축구장 출입 금지는 즐기는 자유를 봉쇄하는 첫번째 권리의 금지라고 생각한다”며 여성의 축구경기장 출입금지를 소재로 다룬 이유를 밝혔다.

여섯번째 한국을 찾았다는 파나히 감독은 “혁명 전에는 여성들이 스타디움에 들어가 경기를 볼 수 있었다”며 “그러나 혁명 이후에 들어선 정부는 아주 종교적이어서 여성과 남성 사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아 그 둘을 항상 갈라 놓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이번 월드컵 때 여성들도 축구를 볼수 있도록 허가했다. 정수완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기자회견 첫머리에서 ‘여성,오프사이드 넘다’를 제목으로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이번 월드컵 때 이란 여성들도 축구 볼 수 있다는 현지 보도를 접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파나히 감독은 “정부의 허가가 있었다지만 반발이 크고, 허가 이후 열린 경기가 없어서 실제로 여성이 입장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영화의 결말은 내가 아니라 축구가 만들었다”

영화 ‘오프사이드’에는 실제 바레인 전이 열린 날 찍은 장면들이 포함돼 있다. 감독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10만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화를 찍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는 경기,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찍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이란은 바레인을 격파하고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 이 때문에 경기장에 진입하려다 검문에 걸린 여자아이들과 이들을 색출해내 지키고 있던 군인, 도로에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남녀 가릴 것 없이 하나가 되어 기쁨을 나눈다. 현실에서도 이란은 바레인을 이기고 본선에 진출했다.

만일 이란이 바레인에게 졌다면 영화는 어떻게 됐을까. ‘여성의 축구장 출입금지’라는 소재는 지킬 수 있었겠지만 영화의 많은 부분은 달라져야 한다.

기자의 다소 엉뚱한 질문에 파나히 감독은 “사실 이란이 이기기를 마음 깊이 바라고 있었고, 희망에 따라 그러한 일이 벌어졌다. 이기지 않았다면 이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나도 정말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 영화는 내가 만든 영화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며 “이 영화의 결말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축구가 만든 것”이라고 우문현답했다.

자국에서는 상영금지,한국에선 첫 선

파나히 감독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과 이란 두 나라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바란다”면서 “영화 ‘오프 사이드’를 월드컵 전에 이란에서 상영하고 싶지만 상영 허가서를 아직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의 전작 영화 중에 이란에서 상영된 작품은 ‘하얀 풍선’ 뿐이다.

그는 이어 “대신 미국 유럽 아시아 20개국에서 상영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어떤 나라는 월드컵 전에 상영되고, 미국과 캐나다는 월드컵이 끝난 10월에 상영된다. 이란에서는 공식상영을 못하고 있지만 월드컵 시즌에 다른 여러 나라에서 개봉하게 되는 것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특히 전주영화제를 통해 소개하게 돼 기쁘다. 한국은 이 영화를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나라다”라고 밝혔다.

아내가 한국음식 배우지 못하면 이혼하겠다?

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파나히 감독은 24시간이나 걸려 전주에 왔다. 감독은 김치 고추장 등 한국의 음식을 굉장히 좋아한다. 부인과 동행했는데 ‘영화제 기간 동안 한국의 음식을 배우지 않으면 이혼하겠다. 이혼하면 한국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농을 할 정도로 한국 음식에 대한 애착이 크다”고 소개했다.

정수완 프로그래머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들며 사실주의적인 영화 만드는 감독이다. 만드는 작품마다 세계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있다. ‘오프사이드’도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오프사이드’는 작품성 뿐만 아니라 2006월드컵 열기와 더불어 대중성까지 갖춘 영화다”라고 파나히 감독과 개막작에 대해 평가했다.

윤운성 프로그래머는 “실제 경기가 열리는 현장에서 찍은 장면들이 있는데 그 안에서 흐트러짐 없는 영상 뽑아낸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이란의 여성차별에 대한 문제제기와 동시에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들의 삶을 보며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지워준다는 측면에서 더욱 좋은 작품”이라고 개막작 선정 배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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