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가 나쁜가?”
영화를 보다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면 이런 생각에 빠질 수 있다. ‘메멘토’(2000)처럼 애초부터 관객과의 두뇌싸움을 전제로 한 영화라면 이런 자괴감도 나쁘지는 않다. 영화가 끝난 다음에라도 곰곰히 영화를 복기하면서 전체를 이해하는 순간 쾌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바탕 웃고 말아야 할 코미디 영화를 보고도 그런 자괴감이 든다면? 눈치껏 따라가지 못한 관객 탓도 있겠지만 영화의 잘못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문식 주연의 코미디 ‘공필두’(감독 공정식·제작 키다리필름)는 여러 인물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이런 한계로 아쉬움을 준다. 영화는 뒤로 갈수록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다양한 인물들이 얽히면서 소동을 일으키다 단번에 해소되는 소동극 형식을 취하려 했다. 그러나 개연성의 부족으로 유쾌한 소동보다는 혼란에 가깝다.
줄거리는 어수룩한 형사 공필두(이문식)가 금괴 밀매 사건의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 여기에 만수파 넘버2 태곤(김수로),그의 애인 민주(김유미),민주와 하룻밤을 보낸 모델 용배(이광호),용배를 쫓는 사채업자 천사장(김뢰하),금괴를 찾는 만수파 보스(박정학),그를 뒤쫓는 강검사(유태웅),경찰을 꿈꾸는 중국집 배달소녀(최여진) 등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문제는 영화의 핵심인 공필두부터 이 소동 속에 뛰어든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필두는 노총각인 자신을 결혼시키려 위독하다는 거짓말을 한 아버지(변희봉) 탓에 수술비 2000만원을 구하려 백방으로 뛰어다니다 만수파를 배신하는 것을 도와달라는 태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필두가 부둣가에서 거래를 하는 만수파를 혼자 덮치자 태곤은 밀수품인 금괴를 가지고 도망친다. 이 때 현장을 덮친 검·경 수사팀에 필두는 체포되고 금괴 밀매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쓴다. 이대로는 비리 경찰로 낙인 찍히고 아버지의 수술비도 마련할 수 없게 된 필두는 몰래 빠져나가 태곤을 뒤쫓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필두의 행보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태곤을 찾는 순간 누명도 벗고 아버지도 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영화의 설정으로는 태곤을 찾아봤자 둘이 물밑 거래를 한 사실을 되돌릴 수는 없고,2000만원을 정산받는다 해도 애초부터 멀쩡한 아버지가 그 덕에 사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태곤은 영화 초반에 사고로 죽고 만다. 태곤의 시체가 담긴 차 트렁크에는 대량의 금괴가 함께 들어있지만 필두 입장에서는 이를 발견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그럼에도 영화는 필사적으로 태곤을 찾는 필두에다 역시 왜 바쁘게 움직이는지 모를 인물들까지 중첩되면서 뭐가 뭔지 모를 소용돌이에 빠진다.
‘마파도’(2005)에 이어 두 번째 주연을 맡은 이문식 만큼은 ‘꽃미남이 아니어도 주연 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이름도 없는 배달소녀로 나와 웃음을 주는 최여진 등 다른 배우들도 자신의 장면에서는 확실히 연기해낸다. 그런 호연들이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11일 개봉. 15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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