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別曲’

어떤 일이 100명에서 51명의 찬성으로 결정됐다하여 꼭 잘된 결정인 것은 아니다. 다수결은 다만 의사 결정의 보편적 수단일 뿐, 절대적 진리로 보긴 어려울 때가 많다.

조병옥은 이승만 독재에 저항한 정치가로 민주화 운동의 거목이다. 그는 저서 ‘민주주의와 나’에서 ‘나폴레옹은 국민투표로 황제가 됐고, 히틀러의 독재 또한 국민투표를 악용했다’며 투표의 맹점을 ‘민주주의는 역행하는가?’라고 반문하며 개탄했다.

키케로(BC 106~43)는 정치가며 철학가로 당대의 지성인이었다. 제3차 삼두정치 확립후 안토니우스에게 추방당해 결국은 살해된 게 알고보면 지성이 화근이었다. 그런 키케로의 ‘의무론’ 중엔 ‘가장 고약한 풍습은 벼슬하겠다고 선거운동하며 다투는 일이다’라고 한 대목이 있다.

그리스 아테네에선 패각추방이 있었다. 국외로 추방할 독재자를 투표로 가려내는 것이다. 그 무렵은 종이가 귀해 이집트에서 수입했으므로 조개껍질에 이름을 써넣었다. 그런데 후세에 시민광장으로 투표가 실시된 아고라 발굴작업에서 똑같은 필체의 조개껍질이 무더기 무더기로 무수히 발견됐다. 부정투표가 있었던 것이다.

영국은 산업혁명후 허허벌판이 신흥도시가 되고 반대로 소도시가 폐허화 됐는가 하면 심지어는 물에 잠긴 지역이 있는데도 선거구 정비가 안되어 선거의 맹점을 빚은 적이 있었다.

5·31 지방선거가 각급 후보자 등록을 마쳐 본격화됐으나 유권자의 관심을 제대로 끌지 못하고 있다. 투표한 사람 중에 제비 뽑아 도서상품권 등을 주는 해외토픽 감의 투표용지복권제 도입이 검토되는 판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호남지역정서를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나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현지에 가 살다시피 해가며 갖는 ‘호남 민심의 적자’ 경쟁이 치열하다. “참여정부는 부산 정권인데 왜 부산에서 지지해 주지 않느냐”는 것은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별난 투정이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좌충우돌이다. 지방선거후 특검으로 비리 단체장을 솎아내겠다며 엄포를 토하더니, 여당의 독선과 오만을 반성한다며 갑자기 납작 엎드려 보이는 게 또 언제 돌아설지 모른다.

한나라당은 ‘공천장사’의 오명속에 자만하지 않는다며 민심 이반의 반사이득을 표정관리 하기에 바쁘다.

이런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6월말 방북을 위한 경의선 개통 문제를 둔 북풍이 예사롭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생각난다. 지난 2월26일 청와대 기자들과 가진 북악산 산행길에서 한 말이다. “선거라는 게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비실비실 웃으면서 나가서 시비하고, 선수들끼리 알면서도 부분적으로 국민을 속이는 게임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라고 했다. 작금의 5·31 지방선거 상황이 바로 이런 것 같다.

중우정치는 민주정치를 비꼬는 말이다. 패각추방이 있었던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의 타락에서 유래된 말이다. 민주적인 선거라 하여 민주적인 결과가 출산되는 것은 아니다. 의외의 기형아도 출산된다. 그런데도 선거에 의존하는 것은 더 나은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산업혁명 직후같은 엉터리 선거구는 우리에겐 없지만 지방의원 선거구가 잘못된 곳은 많다. 그래도 선거를 해야하는 것은 당장은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선거란 2천 수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양이다. 키케로의 말처럼 벼슬하겠다고 선거운동하며 다투는 고약함은 옛과 같은데, 지금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은 선거운동비란 이름의 돈이다. 고대 선거엔 선거운동비가 별로 안들어갔던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의 선거에서도 궁금한 것은 역시 돈이다. 당선된다 하여도 4년동안 받을 월급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선거운동비로 들이는 돈놀음은 두렵다.

냉소주의는 민주정치를 중우정치로 만드는 주요인이 된다. 선거를 애써 외면하는 것은 고상한 은둔이 아닌 비겁한 회피다. 유권자들이 출마족들보다 못해 그들 중에서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이 책임이므로 표를 찍어야 하는 것이다. 정치권을 나무라고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서도 투표권을 행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임양은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